4.19 혁명

4·19 혁명(四一九革命)은 1960년 4월에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민주주의 항쟁이다. 4·19 혁명은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자유당 정권의 부정부패와 1959년 3월 15일에 실시된 부정선거(제4·5대 대통령·부통령 선거)에 대한 시민·학생들의 대규모 저항으로 시작되었으며,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와 제2공화국 수립으로 귀결되었다.

개요

  • 시기 : 1960년 4월 11일 ∼ 4월 26일
  • 주요 참여자 : 대학생·고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민운동, 한국 민주당(당시 민주당), 일부 군부·경찰(계엄군)
  • 주요 대립 : 자유당(이승만 정부) ↔ 민주당·시민·학생
  • 결과 : 이승만 대통령 하야, 과도정부 수립 후 1960년 6월 15일 제2공화국 헌법 공포, 윤보선 대통령 취임

배경

  1. 정치·사회적 배경

    • 1948년 건국 이래 이승만 대통령은 독재적 통치를 이어왔으며, 1950년대 말까지 자유당은 권위주의적 체제로 국가를 운영하였다.
    • 1958년 자유당은 헌법을 개정해 국회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대통령이 연임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정권 유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마련하였다.
  2. 3·15 부정선거

    • 1959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4·5대 대통령·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은 대규모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투표함 개조·표조작 등).
    • 선거 부정이 언론과 야당에 의해 폭로되면서 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되었다.

전개

  • 초기 시위(4·11 ∼ 4·15)

    • 4월 11일, 부산·마산 등지에서 대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되었으며, 곧 전국 대학·고등학교로 확산되었다.
    • 학생들은 “학문의 자유와 청년의 자유”를 구호로 내세우며 자유당 정권을 비판하였다.
  • 확산과 대규모 시위(4·19 ∼ 4·25)

    • 4월 19일(당시 4·19 의거)에는 서울 종로·청와대 앞에 대규모 시위대가 모였고, 경찰이 발포하면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 시위는 점차 일반 시민까지 포함하게 되었으며, 군 지휘부는 일부 부대에서 계엄군 파견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 정부의 대응과 하야(4·26)

    • 군부 내 일부 지휘관이 무력 진압에 반대하면서 군 지휘부가 분열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4월 26일 하야를 선언하였다.

사후

  • 과도정부와 제2공화국

    • 하야 직후 과도정부가 구성되었으며, 6월 15일 제2공화국 헌법이 공포되었다.
    • 1960년 8월 13일에 실시된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윤보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 역사적 평가

    • 4·19 혁명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첫 번째 대규모 민주화 운동으로 평가받으며, “미완의 혁명”이라는 별칭도 사용된다.
    • 이후 4·19 혁명은 매년 4월 19일에 ‘4·19 민주화운동 기념일’로 지정되어 기념된다.

주요 용어·별명

  • 4·19 민주혁명, 4·19 학생운동, 4·19 의거, 4월 혁명, 4월 의거, 미완의 혁명 등

참고문献

  1. 위키백과, “4·19 혁명”, https://ko.wikipedia.org/wiki/4%C2%B719_%ED%98%81%EB%AA%85
  2. 민주화운동사전, “4월혁명(4·19혁명)”, https://dict.kdemo.or.kr/entry/88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19혁명”,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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