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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사건

4·12 사건(四一二事件, April 12 Incident)은 1927년 4월 12일 중화민국 상하이에서 발생한, 장제스(蔣介石)를 중심으로 한 중국국민당 우파 세력이 중국공산당 및 국민당 좌파를 대상으로 자행한 무력 진압 및 숙청 사건이다. 이 사건은 상하이 쿠데타, 4·12 상하이 쿠데타, 또는 4·12 청당(淸黨)으로도 불린다.

배경

1920년대 중반, 쑨원(孫文)은 북벌(北伐)을 추진하기 위해 소련 및 중국공산당과의 협력 관계를 구축하였고, 이른바 제1차 국공 합작(國共合作)이 성립되었다. 1925년 쑨원 사후, 국민당 내에서는 장제스가 군권을 장악하고 왕징웨이(汪精衛)가 당수직에 오르는 체제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국공 합작에 반대하는 세력이 점차 세를 키웠고, 소련의 코민테른(Comintern)이 중국공산당을 통해 혁명을 확산하려는 전략과 국민당의 자본주의적 국가 건설 노선 사이에 근본적인 갈등이 존재하였다.

전개

1927년, 북벌이 진행되던 도중 장제스는 상하이에 주둔한 국민혁명군과 청방(靑幇) 및 삼합회(三合會) 등 조직폭력배를 동원하여, 무장한 노동자 무장대(工人糾察隊)를 해산시키고 중국공산당원과 좌파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와 처형을 단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의 공산당원과 노동자, 좌파 인사들이 사망하거나 투옥되었다.

결과

이 사건으로 제1차 국공 합작은 사실상 종료되었고, 이후 제1차 국공 내전(國共內戰)이 본격화되었다. 장제스는 국민당 내 주도권을 확고히 장악하고 난징(南京)에 국민정부를 수립하였다. 중국공산당은 도시 지역에서의 무장 혁명 노선이 좌절되자, 마오쩌둥(毛澤東)을 중심으로 농촌 지역으로 근거지를 옮겨 홍군(紅軍)을 조직하고 소비에트를 건설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하였다. 같은 해 8월 1일에는 난창 봉기(南昌起義)가 발생하여 공산당의 무장 투쟁이 본격화되었다.

명칭

이 사건에 대한 명칭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다. 진압을 주도한 측에서는 '청당'(淸黨, 당 숙청) 또는 '4·12 청당'이라 부른 반면, 반대 측에서는 '4·12 반혁명 정변'(四一二反革命政變) 또는 '4·12 참안'(四一二慘案, 4·12 참사)으로 칭한다. 서구권에서는 '상하이 학살'(Shanghai Massacre) 또는 '상하이 쿠데타'(Shanghai Coup)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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