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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년

321년(서기 321년, 로마 숫자 CCCXXI)은 율리우스력에서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로마 제국에서는 '크리스푸스와 콘스탄티누스 집정관의 해'로 불렸으며, 로마 건국 기원(AUC)으로는 1074년에 해당한다. 이 연도 명칭은 중세 초기에 안노 도미니(Anno Domini) 역법 체계가 유럽에서 보편화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 시기가 각국에서 다양한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동진(東晉)은 대흥(大興) 4년, 성한(成漢)은 옥형(玉衡) 11년, 전조(前趙)는 광초(光初) 4년, 전량(前凉)은 건흥(建興) 9년이었다. 한반도에서는 신라가 흘해이사금 12년, 고구려가 미천왕 22년, 백제가 비류왕 18년에 해당한다.

주요 사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기록되어 있다.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는 고트족을 다뉴브 강 국경 밖으로 몰아내고 트라야누스 다리를 수리했으며, 옛 다키아 속주(현재의 루마니아 지역)로 원정을 이끌어 야만족과 평화 협정을 체결했다. 또한 3월 7일에는 '태양의 숭배할 만한 날'(즉 일요일)에 도시 주민들이 일하지 않고 상점이 문을 닫아야 한다는 법령을 공포했다. 다만 농업은 예외로 두었다. 이 법령은 훗날 기독교의 안식일 제도와 연결되는 중요한 역사적 조치로 평가된다. 콘스탄티누스 1세는 또한 전염병으로 인구가 줄어든 제국의 식량 가격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죄수들을 로마의 곡물 제분 작업에 동원하기도 했다.

종교 분야에서는 이 해에 기독교 교회가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되었고, 알렉산드리아에서 열린 시노드(교회회의)가 아리우스주의를 정죄했다. 또한 독일 지역(현재의 쾰른)에서 유대인 공동체가 처음으로 문서 기록에 등장한 해로 알려져 있다.

아시아에서는 탁발하로(拓跋賀傉)가 사촌인 탁발우율(拓跋鬱律)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켜 대(代) 왕국의 새로운 왕이 되었다. 한편 동진의 장군 조적(祖逖)은 북벌을 실행하여 옛 서진(西晉)의 수도였던 낙양까지 진군했으나, 동진 조정이 조적이 권신이 될 것을 우려하면서 영토를 완전히 탈환하지 못한 채 이 해에 사망했다. 이로 인해 남북조의 형세가 고착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해에 태어난 인물로는 진(晉)의 성제(成帝) 사연(司馬衍, 사후 시호는 성제), 동진의 황후 두릉양(杜陵陽), 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1세(재위 364~375)가 있다. 사망한 인물로는 탁발우율과 동진의 장군 조적이 있다.

321년은 4세기 초 로마 제국의 기독교 공인과 주일 휴무 법령, 그리고 동아시아 각국의 정치적 변동이 교차하는 시점으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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