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부정선거

정의
3·15 부정선거는 1960년 3월 15일에 실시된 제4대 대통령선거와 제5대 부통령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이 대대적인 선거부정행위를 저질렀던 사건을 일컫는다. 이 선거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자유당)과 이기붕 부통령 후보(자유당)의 당선이 확정적으로 보이도록 사전투표, 공개투표, 개표조작 등을 포함한 조직적인 부정행위가 이루어졌다.

배경

  •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은 처음에 불출마를 선언했으나, 4선 출마 의사를 뒤집어 자유당이 대통령 후보로 자신을 내세우게 되었다.
  • 자유당은 중앙·지방 조직을 전면적으로 장악하고, 대한반공청년단 등 청년단체를 이용해 선거준비에 나섰다.
  • 1959년 11월 26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는 조병옥(민주당)·장면(민주당) 등을 후보로 선출했지만, 조병옥이 1960년 2월 15일 사망하면서 대통령 후보가 공석이 되었다. 이에 선거의 초점은 부통령선거(현직 부통령 장면 vs 자유당 후보 이기붕)로 이동하였다.

부정선거 전개

  • 내무부 장관 최인규는 전국 경찰 인사이동, 시·읍·면·동 단위 친목회 조직 등을 통해 여당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운동을 지시했다.
  • 구체적인 부정선거 방안으로는 4할 사전투표, 3인·5인조 공개투표, 군인·경찰을 동원한 강제 투표, 야당 참관인 배제 등이 있었다.
  • 자유당은 선거자금 확보를 위해 약 70억 원(당시 화폐) 규모의 기금을 모금했다.
  • 1960년 3월 15일 투표는 야당 측이 거의 방관한 상태에서 진행되었으며, 개표 과정에서 이승만·이기붕에 대한 득표율이 95 % ~ 99 %까지 조작된 사례가 보고되었다.

저항과 결과

  • 부정선거에 대한 전국민적 저항이 3월 15일 저녁 마산에서 시작되어 4·19혁명으로 확산되었다.
  • 4·19혁명(1960년 4월 19일) 이후 이승만 정권은 붕괴하고, 대통령 직선제 개편과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 부정선거 관련자들은 재판에 회부되었으며, 당시 내무부 장관 최인규는 사형을 선고받았다(후에 감형·특사 등으로 사면).

의의
3·15 부정선거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선거 부정이 민주주의에 미치는 파괴적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로, 이후 선거제도 개혁과 시민사회의 감시 강화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4·19혁명의 직접적인 촉발 요인으로 평가되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기록된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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