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년은 율리우스력에서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으로, 서기 3세기의 연도이다. 로마 제국에서는 디오클레티아누스와 막시미아누스가 집정관으로 재임한 해로 기록되었으며, 로마 건국 기원으로는 1052년에 해당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서진(西晉) 혜제(惠帝)의 원강(元康) 연호 9년에 해당한다.
연호 및 기년
299년 당시 동아시아 각국의 연호와 재위 연수는 다음과 같다.
- 서진(西晉): 원강(元康) 9년, 혜제(惠帝) 재위 10년
- 신라(新羅): 기림이사금(基臨泥師今) 재위 2년
- 고구려(高句麗): 봉상왕(烽上王) 재위 8년
- 백제(百濟): 분서왕(汾西王) 재위 2년
로마 제국
이 해에 로마 제국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사산조 페르시아의 샤한샤 나르세와 니시비스 평화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조약은 이후 약 40년간 유지되었으며, 페르시아 측은 아르메니아, 캅카스, 상부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로마의 지배권을 인정하였다. 로마에 우호적이던 티리다테스 3세는 아트로파테네 국경까지 이르는 아르메니아 전역을 받았고, 이베리아 왕국의 미리안 3세는 로마의 클라이언트 왕이 되었다. 또한 로마는 티그리스 강 너머의 다섯 사트라피(주)를 획득하였다.
같은 해 갈레리우스는 페르시아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테살로니카(현대 그리스)에 갈레리우스 개선문을 건립하였다. 갈레리우스는 이 해 또는 이듬해에 사르마티아인과 마르코만니족에 대해서도 성공적인 원정을 수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296년부터 시작한 북아프리카에서의 퀸케겐티아니 및 베르베르족 정벌 원정을 마무리하였다. 그의 원정은 서쪽으로 마우레타니아, 동쪽으로 트리폴리타니아까지 이르렀다. 로마군이 요새 성벽을 돌파하자 아프리카 반란 지도자 율리아누스는 자신의 요새에서 불 속으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막시미아누스는 승리를 기념해 로마로 개선 행진하며 복귀한 후, 동료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를 기리는 뜻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욕장(목욕탕)을 건설하도록 하였다. 또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 시기에 로마 군대에서 기독교인을 추방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중국
서진에서는 황후 가남풍(賈南風)이 태자 사마욱(司馬遹)을 반역죄로 몰아 폐위시켰다. 이 사건은 이후 서진 왕조의 내부 혼란(팔왕의 난)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탄생과 사망
299년에는 동진(東晉)의 명제(明帝)가 태어났다(325년 사망). 사망자로는 바빌로니아의 아모라 학자 유다 바르 에제키엘(기원 220년생)과 중국의 부족장이자 반란 지도자였던 제만년(齊萬年)이 기록되어 있다.
위 내용은 위키백과 및 관련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로마 제국과 동아시아 양측의 사료에 근거한 정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