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의 주권 반환 이후 첫 번째 완전한 10년으로,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와 도전이 있었던 시기이다. 이 시기는 홍콩특별행정구(HKSAR)가 '일국양제(一國兩制)' 체제 아래에서 자치권을 유지하면서도 중국 본토와의 통합이 심화된 과정으로 설명된다.
배경과 경제
2000년대 초반 홍콩 경제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다. 실업률은 1997년 2.2%에서 2000년 4.4%, 2003년 7.9%로 상승했다.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는 약 6년간 지속된 디플레이션 기간을 유발했으며, 이는 2004년 7월까지 이어졌다. 이후 경제는 점차 회복되어 전체 실업률은 2008년 3.6%까지 하락했으나, 같은 해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2009년에는 다시 5.4%로 상승했다.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은 홍콩 금융 부문에 큰 타격을 주었다. 홍콩 달러는 전통적으로 미국 달러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중국 위안화로의 고정 전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위안화의 완전한 태환 가능성 부족으로 인해 실행되지는 않았다.
정치
이 시기의 정치 구도는 크게 친베이징(친중) 진영과 범민주 진영으로 양분되었다.
2003년, 홍콩 정부는 국가 안보 관련 조항인 홍콩 기본법 제23조 입법을 추진했다. 이 법안은 반국가 전복 행위를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언론·종교·결사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다. 행정장관 둥젠화(董建華)의 낮은 지지율, 경제 침체, 전염병 통제에 대한 불만이 겹치면서 2003년 7월 1일 약 50만~1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시민들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이는 홍콩 반환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로 기록되었으며, 친정부 의원들의 지지 철회로 인해 제23조 입법 시도는 무산되었다.
둥젠화는 2005년 3월 사임했으며, 후임으로 영국 식민지 시절 공무원 출신인 쩡인취안(曾蔭權)이 행정장관에 취임했다.
언론과 자유
홍콩의 언론은 국가 통제 아래에 놓이지는 않았으나, 많은 시민과 기자들이 자기 검열이 존재한다고 인식했다. 홍콩 기자협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자의 58.4%가 언론 자유가 반환 이후 악화되었다고 응답했다. 2009년 국제언론자유지수에서 홍콩은 48위를 기록했다. 다만 인터넷 검열은 이 시기 주요한 문제로 부각되지는 않았다.
보건 위기
2000년대 홍콩은 두 차례의 주요 보건 위기를 겪었다. 첫째, 1997년부터 시작된 조류독감(H5N1) 대응은 200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어 수백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되었다. 둘째, 2003년 2월 첫 사례가 기록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은 홍콩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SARS는 1,700명 이상의 감염자와 299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으며, 학교 폐쇄와 관광 중단 등 사회·경제 활동이 크게 위축되었다. 홍콩은 2003년 6월 23일까지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염병 영향 지역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문화와 엔터테인먼트
2000년대 초반 가수 장국영(張國榮)과 매염방(梅艷芳) 등의 사망은 홍콩 광둥어 대중음악(Cantopop) 산업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08년 진관희(陳冠希) 음란 사진 유출 사건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스캔들 중 하나로 알려졌다. 같은 해 발생한 쓰촨 대지진을 위한 모금 캠페인에는 홍콩 연예계의 다수가 참여했다.
기반 시설
2000년대 동안 여러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완공되었다. 2003년 제2 국제금융센터(2 IFC, 높이 415m)가 완공되었고, 2000년대 말에는 높이 484m의 국제상업센터(ICC)가 홍콩 최고층 건물이 되었다. 철도 부문에서는 2002년 MTR 정관오선, 2003년 KCR 사이팃선, 2004년 KCR 마온산선, 2005년 MTR 디즈니선 등이 완공되었다. 2005년 홍콩 디즈니랜드가 개장했고, 2006년 곤돌라 리프트 시스템인 옹핑 360이 완공되었다.
스포츠
홍콩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승마 종목 개최지였다. 2009년 말에는 홍콩 최초로 동아시아 경기 대회를 개최했다.
인구
2000년 홍콩의 인구는 약 690만 명이었으며, 2009년에는 약 705만 명으로 증가했다. 인구 증가는 주로 중국 본토 시민들의 이민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출생률은 7.29명(천 명당)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국제 관계
2005년 완자이(灣仔)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가 개최되었으며, 148개국이 참여한 홍콩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제 행사 중 하나였다. 회의 기간 중 시위가 발생했고, 경찰은 최루제와 페퍼 스프레이를 사용했다. 이 사건은 일부 언론에서 "완자이 공성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