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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KBS 사태

1990년 KBS 사태는 1990년 3월부터 5월까지 대한민국의 공영 방송사인 한국방송공사(KBS)에서 발생한 노동조합의 파업과 농성,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공권력 투입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을 가리킨다. 'KBS 4월 투쟁', 'KBS 방송민주화 투쟁'이라고도 불린다.

배경

1987년 6월 항쟁과 6·29 선언을 계기로 대한민국 사회에 민주화 물결이 확산되면서 언론계에서도 민주화 요구가 분출하였다. KBS에서는 1988년 5월 노동조합이 결성되었으며, 1988년 11월 사장으로 선임된 서영훈은 '최초의 민선 사장'으로서 노사 간 대화와 타협을 이어갔다. 그러나 1990년 1월 '3당 합당'으로 여소야대 구도를 뒤집고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출범시킨 노태우 정부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강화하던 KBS에 대한 직접 통제를 시도하였다.

경과

1990년 2월 감사원은 KBS에 대한 특별감사를 실시하였고, KBS가 노사 합의로 지급한 법정 수당을 '예산 변칙 지출'로 규정하며 서영훈 사장 등 고위 간부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였다. 이에 따라 KBS 이사회는 서영훈 사장의 면직을 의결하였고, 서영훈은 1990년 3월 8일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KBS 노동조합은 이에 반발하여 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고 집회와 농성을 이어갔다. 1990년 4월 3일 KBS 이사회는 정부기관지 사장 출신인 서기원을 신임 사장으로 선출하였으며, 노동조합은 서기원의 출근 저지에 나섰다. 4월 11일 서기원의 취임식은 노조의 반대로 무산되었고, 다음 날인 4월 12일 경찰 병력이 KBS 본관에 투입되어 농성 중이던 노조원 117명이 연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KBS 9시 뉴스가 방송 도중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4월 13일 KBS 노동조합은 전국비상사원총회를 개최하고 서기원 퇴진과 구속자 석방 시까지 송출 기술 부서를 제외한 전 부서의 방송 제작 거부를 결의하였다. 4월 20일 밤에는 경찰 병력 약 3,000명이 다시 KBS 본관에 투입되어 조합원 333명이 연행되었다. 4월 23일 정부는 4개 부처 장관 명의의 'KBS 사태에 대한 담화문'을 발표하며 강경 대응 방침을 공식화하였다.

5월 1일 문화방송(MBC) 노동조합이 KBS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며 연대 제작 거부에 돌입하였다. 양 방송사 노동조합은 5월 2일 공동 집회를 개최하는 등 연대 투쟁을 전개하였으나, 5월 4일 경찰 병력이 MBC 노동조합 사무실에 진입하여 KBS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연행되면서 투쟁은 전환점을 맞았다.

수습과 이후

MBC 노동조합은 5월 7일 제작에 복귀하였고, KBS 노동조합은 5월 17일 제작 복귀를 선언하면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방송 제작 거부는 약 37일간 지속되었다. 이후 KBS 노동조합원 11명이 해직되었으며, 다수의 노조 간부와 기자들이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다.

노태우 정부는 1990년 6월 14일 방송제도 개편안을 발표하였고, 같은 해 7월 방송법, 한국방송공사법, 한국방송광고공사법 등 방송 관련 3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개정 법안에는 민영방송 신설, 방송위원회 권한의 조정, 한국방송공사 이사회 기능의 경영 분야 한정 등이 포함되었다.

사태 관련 사법 처리 인사들에 대해서는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사면 및 원직 복직 조치가 이루어졌다. KBS 사태는 1987년 이후 전개된 언론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평가되며, 이후 MBC의 1992년 총파업 등 언론계 민주화 투쟁에 영향을 준 것으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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