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아르메니아 지진은 스피타크 지진(Spitak earthquake)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1988년 12월 7일 현지 시각 오전 11시 41분에 당시 소련의 일부였던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현 아르메니아 공화국)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규모 지진이다.
진앙은 아르메니아 북부 로리주에 위치한 스피타크(Spitak) 시 인근이었으며, 진원 깊이는 약 5~10km로 비교적 얕았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모멘트 규모(Mw) 6.8로 측정하였고, 소련 과학자들은 표면파 규모(Ms) 7.0으로 보고하기도 하였다. 최대 진도는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 기준 X(Devastating)로 기록되었다. 지진의 지속 시간은 약 20초에서 30초가량이었다.
이 지진은 알프스-히말라야 조산대를 따라 이어지는 광범위한 활성 지진대에 속하며, 아라비아판과 유라시아판의 수렴 경계에서 발생한 충상단층(역단층)의 미끄러짐이 원인이었다. 본진 발생 직후에는 주향이동단층 사건이 추가로 발생하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였다.
피해는 매우 심각하였다. 스피타크 시가 완전히 파괴되었고, 레니나칸(현 귬리), 키로바칸(현 바나조르) 등 주요 도시와 여러 외곽 마을이 큰 피해를 입었다. 사망자는 약 25,000명에서 50,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며, 부상자는 최대 130,000명에 달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재산 피해액은 미화 약 162억 달러(1988년 기준 약 44.1억 달러)로 추산되었다. 피해가 컸던 원인 중 하나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통치 시기인 1970~80년대에 건설된 부실한 아파트 및 건축물의 취약한 내진 설계가 지적되었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지진 발생 며칠 만에 미국에 인도적 지원을 공식 요청하였는데, 이는 1940년대 후반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냉전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총 113개국이 구조 장비, 수색 팀, 의료 용품 등 인도적 지원을 보냈다. 구호 물품을 수송하던 중 소련 항공기와 유고슬라비아 수송기가 각각 별개의 사고로 추락하여 추가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지진 당시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혼란과 민족 갈등이 고조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지진 발생 15개월 전부터 예레반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었으며, 숨가이트 포그롬 등 아제르바이잔에서의 민족 폭력을 피해 약 50,000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아르메니아로 대규모 이동하는 등 사회적 혼란이 심화된 상태에서 자연재해가 겹쳤다.
이 지진은 지진학계에서 단층 파열 메커니즘과 지진공학적 측면에서 철저히 연구되었으며, 이후 Rock Aid Armenia 등 국제적 음악 기부 운동이 전개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