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인터콘티넨털컵은 국제 축구 클럽 대회인 인터콘티넨털컵의 1977년도 에디션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 클럽 컵 우승팀과 남미축구연맹(CONMEBOL)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이 맞붙어 세계 챔피언을 가리는 대회였다. 그러나 이 대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개최되지 않았다.
개요 인터콘티넨털컵은 1960년부터 UEFA와 CONMEBOL이 공동 주최하여 유럽과 남미 클럽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기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1970년대 들어 유럽 팀들이 남미 원정의 긴 여정과 당시 경기장에서 빈번했던 거친 플레이와 폭력 사태를 이유로 출전을 꺼리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로 인해 여러 차례 대회가 취소되거나 유럽 준우승팀이 대신 출전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1977년 참가 예정 팀
- 유럽 챔피언: 1976-77 시즌 유러피언컵 우승팀은 잉글랜드의 리버풀 FC였다. 리버풀은 결승전에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 남미 챔피언: 1977년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팀은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였다. 보카 주니어스는 크루제이루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취소 배경 규정상 리버풀과 보카 주니어스는 1977년 인터콘티넨털컵에서 맞붙을 예정이었으나, 리버풀은 당시 인터콘티넨털컵 출전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유럽 클럽들의 분위기를 따라 출전을 거부했다. 유럽 구단들은 이 대회로 인한 재정적, 체력적 부담과 함께 경기장에서의 폭력적인 상황을 우려하여 출전을 꺼렸다. 결국, 리버풀의 출전 거부로 인해 1977년 인터콘티넨털컵은 공식적으로 개최되지 못했다.
영향 및 후속 조치 1977년 인터콘티넨털컵의 취소는 1970년대 후반 인터콘티넨털컵의 위상이 약화되고 대회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음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이다. 1978년 대회 또한 리버풀의 출전 거부로 인해 취소되었고, 1979년에는 노팅엄 포레스트가 출전을 거부하여 대신 출전한 말뫼 FF가 파라과이의 올림피아 아순시온에게 패배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1980년부터는 일본 자동차 회사인 토요타의 후원을 받아 토요타컵(Toyota Cup)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도쿄에서 단판 승부로 개최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중립 지역에서 단일 경기로 승패를 결정함으로써 유럽 팀들의 부담을 줄이고 대회의 존속을 가능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