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헝가리 혁명(헝가리어: 1956-os forradalom)은 1956년 10월 23일부터 11월 4일(일부 지역에서는 11월 10~11일까지)까지 헝가리 인민공화국에서 발생한 전국적인 반소(反蘇) 민주화 운동이다. 냉전 시기 동구권에서 발생한 최초의 대규모 반소 항쟁으로 평가된다.
배경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헝가리는 소련의 영향권 아래 놓였으며, 1949년 헝가리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스탈린주의자 라코시 마차시(Mátyás Rákosi)가 이끄는 정부는 국가보안국(ÁVH)을 이용한 정치적 탄압, 강제 산업화, 농업 집단화를 추진하였으며, 이로 인해 경제난과 생활 수준 저하가 초래되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소련에서 탈스탈린화가 진행되면서 개혁주의자 너지 임레(Imre Nagy)가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총리를 역임하였으나, 라코시 세력의 반발로 해임되었다. 1956년 2월 니키타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연설과 같은 해 6월 폴란드 포즈난 노동자 시위는 헝가리 내 반소 정서를 고조시켰다.
발발과 전개
1956년 10월 23일, 부다페스트의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약 2만 명의 시위대가 헝가리 국회의사당 앞에 집결하였다. 시위대는 정치·경제 개혁을 요구하는 16개조 요구문을 발표하고, 스탈린 동상을 철거하였다. 같은 날 밤, 헝가리 노동인민당 제1서기장 게뢰 에르뇌(Ernő Gerő)의 강경 연설 이후 마자르 라디오 방송국 앞에서 시위대와 국가보안국 간 충돌이 발생하여 총격이 시작되었고, 첫 사망자가 나오면서 혁명으로 확산되었다.
10월 24일, 헝가리에 주둔 중이던 소련군이 부다페스트에 진입하였으나, 헝가리 인민군 일부가 시민군에 합류하면서 저항이 격화되었다. 10월 25일 코수트 광장에서 시위대에 대한 총격으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10월 28일까지 혁명은 헝가리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라코시와 게뢰 등 강경파는 소련으로 도피하였다.
너지 정부와 개혁
소련은 상황 수습을 위해 너지 임레를 총리로 복귀시켰다. 너지 정부는 10월 28일 휴전을 선언하고 국가보안국 해체, 정치범 사면, 다당제 도입을 발표하였다. 11월 1일에는 헝가리의 바르샤바 조약 기구 탈퇴와 중립을 선언하고 유엔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 기간 동안 헝가리 전역에서는 혁명 평의회와 노동자 평의회가 조직되어 지방 행정을 담당하였다.
소련의 재침공과 진압
소련 지도부는 처음에는 군사 개입에 신중한 입장이었으나, 너지 정부의 바르샤바 조약 탈퇴 선언과 헝가리 중립 선언 이후 입장을 선회하였다. 11월 3일, 소련군은 협상을 빌미로 헝가리 국방장관 팔 말레테르(Pál Maléter)를 체포하였다. 11월 4일 새벽, 이반 코네프 원수 지휘 아래 '소용돌이 작전'(Operation Whirlwind)이 개시되어 소련군 17개 사단이 부다페스트를 공격하였다. 너지 임레는 마지막 라디오 방송을 통해 소련의 공격을 알렸다.
헝가리 시민군과 일부 헝가리군은 몰로토프 칵테일 등으로 격렬히 저항하였으나, 압도적인 소련군 전력 앞에 11월 10~11일경 저항이 종료되었다.
피해 규모
헝가리 측 사망자는 약 2,500명(민간인 1,569명 포함), 부상자는 약 2만 명으로 추산된다. 소련군은 699명 전사, 1,450명 부상, 51명 실종의 피해를 입었다. 약 20만 명의 헝가리인이 주로 오스트리아로 망명하였다.
여파
혁명 진압 후 카다르 야노시(János Kádár)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장악하였다. 혁명 관련자 약 26,000명이 재판에 회부되었고, 이 중 229명이 사형, 22,000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너지 임레는 유고슬라비아 대사관으로 피신하였으나, 안전 통행 보장을 받고 대사관을 나서던 중 소련군에 체포되어 루마니아로 압송된 후, 1958년 6월 16일 비밀 재판 끝에 처형되었다. 그의 시신은 표식 없는 무덤에 안장되었다가 1989년 동유럽 혁명 이후 정식으로 복권되어 재매장되었다.
국제적 반응
서방 국가들은 소련을 비난하였으나, 당시 수에즈 위기(1956년 10월 29일~11월 7일)로 인해 실질적 개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소련 비판 결의안은 소련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었고, 유엔 총회는 헝가리 문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였으나 실효적 조치로 이어지지 않았다. 타임지는 1956년 올해의 인물로 '헝가리 자유 투사'를 선정하였다.
역사적 의의
1956년 헝가리 혁명은 냉전 시기 동구권에서 소련의 패권에 도전한 대표적 사건으로, 이후 1968년 프라하의 봄, 1989년 동유럽 혁명에 영향을 미쳤다. 헝가리에서는 1989년 이후 10월 23일을 국경일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있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헝가리 혁명 진압에 대해 공식 사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