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벵골 기근(벵골어: মন্বন্তর, 영어: Bengal famine of 1943)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에 영국령 인도의 벵골 지방(현재의 방글라데시와 인도 서벵골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기근이다. 이 기근으로 인해 최소 200만 명에서 최대 30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굶주림, 영양실조, 그리고 이로 인해 발생한 질병(콜레라, 천연두, 말라리아 등)으로 사망했다.
배경 벵골은 오랫동안 영국의 식민 통치하에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경제 구조가 취약해지고 농민들의 빈곤이 심화되어 있었다. 1942년 당시 벵골은 연간 쌀 소비량의 1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순수입 지역이었다. 여기에 1942년 10월, 벵골 해안을 강타한 강력한 사이클론과 이로 인한 홍수는 벼 수확량에 상당한 피해를 입혔으며, 수십만 채의 가옥을 파괴하여 기근의 전조를 보였다.
원인 1943년 벵골 기근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작용한 결과였다.
- 제2차 세계대전의 영향: 1942년, 일본군이 미얀마(버마)를 점령하면서 벵골로의 주요 쌀 수입 경로가 차단되었다. 이는 벵골의 식량 공급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 영국 정부의 식량 정책: 일본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영국 당국은 '부인 정책(Denial Policy)'을 시행했다. 이는 일본군이 사용할 수 있는 보트와 기타 운송 수단을 압수하거나 파괴하고, 잠재적인 침공 지역의 쌀을 몰수하여 저장하는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은 농민과 어부들의 생계 수단을 파괴하고 지역 내 식량 유통을 마비시켰다.
- 전시 물가 상승 및 투기: 전쟁으로 인한 수요 증가와 식량 부족에 대한 우려가 맞물려 쌀 가격이 폭등했다. 상인들은 쌀을 사재기하고 암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판매하며 투기를 부추겼고, 이는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을 구매할 수 없게 만들었다.
- 식량 유통 시스템 마비: 영국령 인도 정부의 비효율적인 식량 배급 시스템과 각 주 간의 식량 이동 제한은 기근 상황을 악화시켰다. 필요한 식량이 제때 공급되지 못했으며, 식량 부족 지역에 대한 지원도 미미했다.
- 처칠 정부의 무관심: 당시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전시 상황을 이유로 벵골 기근 구호에 대한 국제적인 요청을 거부하거나 지연시킨 것으로 비판받는다. 처칠은 벵골 기근의 원인을 벵골인들의 과잉 출산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등 인도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적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피해 및 영향 기근은 농업 노동자, 어부, 소작농 등 사회적 취약 계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수많은 사람들이 식량을 찾아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했지만, 그곳에서도 식량을 얻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사망했다. 사망자의 대부분은 영양실조로 인한 면역력 저하로 콜레라, 이질,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에 취약해져 사망에 이르렀다. 기근은 사회적 질서를 붕괴시키고 수많은 난민과 고아를 발생시켰으며,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성매매로 내몰리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벵골 지역의 경제와 사회 구조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논란과 평가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자신의 저서에서 1943년 벵골 기근이 식량 생산량의 절대적 부족 때문이 아니라, 식량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entitlement)'의 실패, 즉 구매력의 상실과 불평등한 식량 분배 시스템 때문에 발생했다고 분석하며, 정부의 정책 실패가 기근의 주된 원인임을 강조했다. 역사학자들은 영국 정부, 특히 처칠 총리의 대응이 기근의 규모를 악화시켰다고 평가하며,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