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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파리 대홍수

1910년 파리 대홍수(프랑스어: Crue de la Seine de 1910, 영어: 1910 Great Flood of Paris)는 1910년 겨울, 프랑스 파리와 그 주변 지역에서 센강(Seine)이 범람하여 발생한 대규모 홍수이다.

발생 원인 및 배경

1909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파리와 그 주변 지역은 평년보다 훨씬 많은 강수량을 기록하였다. 지표면이 완전히 포화된 상태에서 1910년 1월 중순 폭우가 추가로 내리면서 센강의 여러 지류들이 동시에 범람하기 시작했다. 1910년 1월 18일경부터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전개 과정

1910년 1월 21일, 센강의 물이 하수구와 지하철 터널을 통해 파리 시내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당시 파리의 기반 시설 대부분은 도시 미관을 위해 지하에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홍수에 특히 취약했다. 물은 하수구와 배수로를 통해 역류하여 도시 전역의 지하실을 침수시켰다. 센강 자체가 파리 시내에서 제방을 넘어 직접 범람하지는 않았으나, 지하 터널과 하수구 시스템을 통해 물이 도시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월 28일, 센강의 수위는 평소보다 8.62m 높은 최고점에 도달하였다. 오르세역(Gare d'Orsay)을 비롯한 철도 시설이 침수되었고, 지하철과 트램을 포함한 대중교통이 마비되었다. 전기, 가스, 전화망이 끊겼으며, 거리에는 임시 나무 인도교가 설치되었다. 주민들은 보트를 이용하거나 임시 교량을 통해 이동해야 했다.

피해 규모

홍수는 약 45일간(1910년 1월 18일~3월 8일) 지속되었다. 파리 시내 12개 구(약 720헥타르)가 침수되었으며, 약 2만 채의 건물이 피해를 입었다. 약 20만 명의 파리 시민이 집을 잃고 대피했다. 재산 피해액은 약 4억 프랑(현재 가치로 약 15억 달러, 한화 약 2조 원 상당)으로 추정된다.

사망자 수에 대해서는 기록에 차이가 있다. 파리 시내에서는 공식적으로 사망자가 0명 또는 1명으로 보고되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 자료는 파리 외곽 지역을 포함해 약 6명에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기록한다.

이후 조치 및 영향

프랑스 정부는 긴급 구호 자금을 지원하고 알프레드 피카르(Alfred Picard)를 위원장으로 하는 홍수 조사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이후 센강 상류에 여러 개의 댐과 저수지가 건설되어 수위 조절에 활용되었다.

파리 시내 곳곳에는 1910년 대홍수 당시의 최고 수위를 표시하는 표식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홍수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1층 건물의 높이는 1910년 대홍수 때의 수위보다 높아야 한다는 건축 기준이 생겼다.

문화적 영향

1910년 파리 대홍수는 여러 문학 작품과 영화의 배경으로 활용되었다. 2011년 애니메이션 영화 《파리의 유령》(A Monster in Paris), 2023년 영화 《더 비스트》(The Beast) 등에서 이 홍수가 묘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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