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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국제 정세

19세기 후반(약 1870년대~1900년)의 국제 정세는 유럽 중심의 제국주의 질서가 전 세계로 확장되고, 동아시아에서는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조공·책봉 체계가 붕괴되면서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유럽 정세

유럽에서는 1871년 독일 제국의 통일 이후 비스마르크 체제가 구축되어 상대적 평화가 유지되었다. 독일의 비스마르크 수상은 프랑스를 고립시키고 유럽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복잡한 동맹 체계(삼제동맹, 삼국동맹 등)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1890년 비스마르크가 실각한 이후 독일의 세계 정책(Weltpolitik)이 추진되면서 영국과의 해군 경쟁이 격화되었고, 유럽 열강 간의 대립 구도는 재편되었다. 영국은 종래의 '영광스러운 고립' 정책에서 벗어나 1902년 영일동맹을 체결하고, 이후 프랑스·러시아와의 협상(3국협상)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적 상황이 전개되었다.

제국주의의 확산

19세기 후반은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아시아, 아프리카, 태평양 지역에 대한 식민지 분할을 본격화한 시기였다. 아프리카에서는 1884~1885년 베를린 회의를 통해 유럽 열강 간의 아프리카 분할이 공식화되었다. 아시아에서는 영국이 인도를 장악하고, 프랑스가 인도차이나 반도로 진출하였으며, 러시아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을 추진하면서 만주와 한반도 방면으로 세력을 확장하고자 하였다.

동아시아 정세

동아시아에서는 1840년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배한 이후 서구 열강의 불평등 조약 체제가 도입되면서 전통적인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하였고, 1876년 강화도조약을 계기로 조선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본격화하였다.

청일전쟁(1894~1895)은 이 시기 동아시아 국제 정세의 전환점이었다. 일본은 조선의 내정 개혁을 명분으로 청나라와 전쟁을 벌여 승리하였고, 시모노세키조약을 통해 청나라로부터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포기받고 대만·요동반도 등을 할양받았다. 그러나 러시아·독일·프랑스의 삼국간섭(1895)으로 요동반도는 청나라에 반환되었다. 이 전쟁의 결과 동아시아의 패권은 청나라에서 일본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 각축

19세기 후반 한반도는 청나라, 일본, 러시아,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여러 열강의 이해가 교차하는 국제적 각축장이 되었다.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미국(1882), 영국(1883), 독일(1883), 러시아(1884), 프랑스(1886) 등과 잇따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며 서구 조약 체제에 편입되었다.

1880년대 중반 이후 청·일 간의 패권 경쟁, 러시아의 남하 정책,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1887) 등으로 한반도 정세는 더욱 복잡해졌다. 조선 내에서는 갑신정변(1884), 동학농민운동(1894) 등 정치적 변동이 발생하였고, 열강 간의 세력 균형을 활용하여 자주와 독립을 보장받으려는 균세정책(均勢政策)이 추진되기도 하였다.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영향력이 한반도에서 급속히 확대되었으나, 삼국간섭을 계기로 러시아의 세력도 강화되었다. 이후 러일 간의 대립은 심화되어 1904년 러일전쟁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20세기 초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재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종합

19세기 후반의 국제 정세는 유럽 열강 간의 세력 균형과 제국주의적 팽창, 그리고 동아시아에서의 전통 질서 붕괴와 새로운 패권 경쟁이 중첩된 시기였다. 이 시기에 형성된 국제 관계의 구도는 이후 20세기 초 러일전쟁,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한반도의 식민지화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의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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