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프랑스 총선

1885년 프랑스 총선은 1885년 10월 4일과 10월 18일에 프랑스 제3공화국에서 실시된 하원(Chambre des députés) 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이다.

개요

이 선거는 프랑스 제3공화국 수립 이후 네 번째로 치러진 총선으로, 당시 프랑스 정치권의 주요 세력이었던 공화파와 군주제 부활을 주장하던 보수파 간의 대립 속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1885년 선거는 기존의 소선거구제 대신 중·대선거구 명부제(scrutin de liste)를 채택하여 실시된 것이 특징이다.

배경

선거 직전 프랑스 정계는 식민지 팽창 정책을 둘러싼 갈등으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쥘 페리(Jules Ferry) 내각은 베트남 북부 점령을 시도한 통킹 사건(Tonkin Affair)의 여파로 1885년 3월 실각하였다. 식민지 전쟁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었으며, 이는 온건 공화파(기회주의 공화파)에 대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선거 방식

1885년 선거는 1885년 6월 16일 통과된 법에 따라 각 데파르트망(Département)을 선거구로 하는 명부제 투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유권자는 해당 지역구에 할당된 의원 수만큼의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었으며,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2차 투표를 실시하였다.

결과

선거 결과, 공화파가 전체 의석의 과반을 차지하며 승리하였으나 내부적으로는 분열된 양상을 보였다.

  • 공화파: 온건 공화파(기회주의자)와 급진 공화파를 합쳐 약 380석 가량을 확보하며 다수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그러나 쥘 페리의 실각 이후 온건파의 영향력은 이전보다 약화되었으며, 조르주 클레망소(Georges Clemenceau)가 이끄는 급진파의 목소리가 커졌다.
  • 보수파: 왕당파(레지팀당, 오를레앙당)와 보나파르트주의자들을 포함한 보수 우파 세력은 약 200석 가량을 확보하며 지난 선거에 비해 크게 약진하였다. 이는 공화파 정부의 식민지 정책 실패와 종교 정책에 반감을 가진 유권자들의 표심이 결집된 결과로 분석된다.

영향

선거 이후 공화파 내 온건파와 급진파 사이의 협치가 어려워지면서 정국 불안이 지속되었다. 이는 훗날 조르주 불랑제(Georges Boulanger) 장군을 중심으로 한 불랑지즘(Boulangisme) 운동이 일어나는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명부제 투표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면서 1889년 선거를 앞두고 다시 소선거구제로 회귀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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