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고종 19년)은 조선 근대사에서 가장 격변한 해 중 하나로,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임오군란 발발, 제물포조약 체결,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체결 등 굵직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주요 사건
1. 조미수호통상조약 (朝美修好通商條約) — 1882년 5월 22일
- 장소: 인천 제물포
- 내용: 조선이 서양 국가와 맺은 최초의 수호통상조약. 청나라 이홍장(李鸿章)의 알선으로 체결.
- 특징:
- 관세자주권이 명시되어 조선이 수출입 관세를 자체적으로 정할 수 있었음
- 최혜국대우 조항과 치외법권(영사재판권)이 포함된 불평등조약
- 이후 조선이 다른 서양 열강과 조약을 체결하는 기준(모범)이 됨
2. 임오군란 (壬午軍亂) — 1882년 7월 19일~24일
- 원인:
- 13개월 치나 체불된 구식 군인들의 봉급 문제
- 쌀값 폭등(개항 후 일본으로 쌀 수출 + 흉년)으로 인한 하층민 생활고
- 신식 군대(별기군)와 구식 군인 간의 차별 대우
- 선혜청 당상 민겸호(閔謙鎬)의 강압적 대응
- 경과:
- 7/19: 구 훈련도감 군인들이 선혜청 창고 습격
- 7/22: 주동자 체포 및 고문 → 군중 결집
- 7/23~24: 군중이 4개대로 나뉘어 민씨 세도가·일본공사관·별기군 교관 호리모토 등을 습격, 일본공사관 소실
- 흥선대원군이 재집권, 개화정책 폐지
- 결과:
- 청나라가 3,000명 군대 파견하여 진압
- 대원군이 청나라 톈진(天津)으로 납치됨
- 민씨 정권 재집권
- 청나라의 조선 내정 간섭 본격화
3. 제물포조약 (濟物浦條約, 조일강화조약) — 1882년 8월 30일
- 체결: 조선(이유원·김홍집) vs 일본(하나부사 요시모토)
- 주요 내용:
- 임오군란 주모자 처벌 (20일 기한)
- 일본인 피해자 유족에 5만 원 지급
- 일본 피해 및 군비 배상금 50만 원 (매년 10만 원씩 5년 분납)
- 일본공사관 경비병 주둔 (1개 대대 규모)
- 조선의 대일 사죄사절 파견
- 별도: 수호조규속약 — 일본인의 조선 내지 여행권 확대 (각 항구 사방 50리 → 2년 후 100리)
4.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 — 1882년 8월
- 내용: 조선과 청나라 간의 통상 규정
- 특징:
- 조선이 청의 속방(屬邦)임을 명시
- 청 상인의 한성(서울)·양화진 진출 허용
- 내지통상권·연안무역권·연안해운권 허용
- 청의 영사재판권(치외법권) 인정
- 청 상인에게 매우 유리한 불평등조약
1882년 사건의 역사적 의의
| 사건 | 의의 |
|---|---|
| 조미수호통상조약 | 서양과의 첫 공식 외교, 문호 개방의 확대 |
| 임오군란 | 구旧세력(대원군)의 일시적 재집권, 반개화·반일 감정의 폭발 |
| 제물포조약 | 일본군의 조선 주둔 시작, 조선의 재정 부담 가중 |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청의 조선 속방화 정책 본격화, 내정 간섭 강화 |
1882년의 일련의 사건들은 이후 갑신정변(1884)과 청일전쟁(1894~1895)으로 이어지는 한반도 정세의 분수령이 되었다. 청·일 양국이 조선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조선은 사실상 두 제국주의 세력의 각축장으로 전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