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4년 퀘벡 회의(Quebec Conference, 1864)는 1864년 10월 10일부터 10월 27일까지 캐나다 퀘벡시에서 개최된 회의로, 영국 북아메리카 식민지들의 연방(캐나다 연방) 형성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되었다. 이 회의는 약 한 달 전인 1864년 9월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의 샬럿타운에서 열린 샬럿타운 회의(Charlottetown Conference)의 후속 회의로, 샬럿타운 회의에서 논의된 연방 구상의 구체적인 내용을 확정하는 역할을 하였다.
배경
당시 영국 북아메리카에는 캐나다주(Province of Canada, 오늘날의 온타리오와 퀘벡), 뉴브런즈윅, 노바스코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 뉴펀들랜드의 다섯 식민지가 있었다. 캐나다주는 캐나다 서부(영어권)와 캐나다 동부(프랑스어권) 간의 정치적 갈등으로 의회가 장기간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또한 미국의 팽창주의에 대한 우려와 영국이 북아메리카 식민지 방어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점이 연방 결성의 동기로 작용하였다. 1864년에는 보수파와 개혁파가 연합한 대연정(Great Coalition)이 구성되었고, 이들은 다른 식민지들과의 연방 통합을 목표로 삼았다.
회의 진행
회의에는 다섯 식민지에서 총 33명의 대표가 참석하였다. 캐나다 동부에서는 조지에티엔 카르티에(George-Étienne Cartier), 토머스 다시 맥기(Thomas D'Arcy McGee), 에티엔파샬 타셰(Étienne-Paschal Taché)가, 캐나다 서부에서는 존 A. 맥도널드(John A. Macdonald)와 조지 브라운(George Brown)이 참석하였다. 뉴브런즈윅에서는 존 해밀턴 그레이와 새뮤얼 레너드 틸리가, 노바스코샤에서는 애덤스 조지 아치볼드와 찰스 터퍼가 참석하였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에서는 조지 콜스와 윌리엄 헨리 포프가 참석하였다. 뉴펀들랜드는 프레더릭 카터와 앰브로스 시 두 명을 옵서버(참관인)로 파견하였으나 회의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 타셰가 회의 의장을 맡았다.
주요 논의 사항
회의의 핵심 쟁점은 연방 정부와 지방 정부 간의 권한 배분이었다. 존 A. 맥도널드는 강력한 중앙 정부를 가진 단일 국가(입법 연합)를 주장하였으며, 미국 남북전쟁에서 연방 체제의 붕괴를 경고 사례로 제시하였다. 반면 카르티에는 프랑스어권의 정체성 보호를 위해 강력한 지방 정부를 주장하였고, 해양 식민지 대표들 역시 인구가 많은 중부 캐나다에 의한 지배를 우려하여 연방 체제를 선호하였다.
결과적으로 타협이 이루어져, 권한은 중앙 의회와 지방 의회에 분배되었다. 지방 정부는 교육, 언어, 지방 행정 등을 관장하고, 연방 정부는 통화, 국제 무역, 형법 등을 관장하기로 하였다. 의회는 인구 비례에 따라 선출되는 하원(하원의원)과 지역별 동등한 의석을 갖는 임명제 상원(상원의원)의 양원제로 구성하기로 하였다. 온타리오 82석, 퀘벡 65석, 노바스코샤 19석, 뉴브런즈윅 15석의 하원 의석 배분이 제안되었다. 상원은 온타리오, 퀘벡, 해양 3주(노바스코샤, 뉴브런즈윅,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의 세 지역이 각각 24석씩 배정받기로 하였다. 수도는 오타와로 결정되었다.
72개 결의안
회의는 10월 27일에 종료되었으며, 논의 결과는 72개 조항으로 구성된 결의안(72 Resolutions, 퀘벡 결의안)으로 정리되었다. 이 중 50개 조항은 존 A. 맥도널드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의안에는 연방 정부의 구조, 권한 배분, 재정 문제, 인터콜로니얼 철도(Intercolonial Railway) 건설 지원 등이 포함되었다. 해양 식민지들은 연방 가입의 핵심 조건으로 퀘벡에서 해양 지역을 연결하는 철도 건설을 요구하였고, 이는 결의안에 반영되었다.
영향과 의의
72개 결의안은 이후 각 식민지 의회에서 논의되었고, 1866년 런던 회의(London Conference)에서 법안으로 전환되었다. 이는 1867년 영국 의회가 통과시킨 영국 북아메리카법(British North America Act)의 기초가 되었으며, 1867년 7월 1일 캐나다 자치령(Dominion of Canada)이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는 1873년, 뉴펀들랜드는 1949년에 각각 캐나다 연방에 가입하였다.
1864년 퀘벡 회의는 캐나다 연방의 헌법적 기틀을 마련한 결정적 회의로 평가되며, 참석 대표들은 이후 "연방의 아버지들(Fathers of Confederation)"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