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0년 바타비아 대학살

1740년 바타비아 대학살(영어: 1740 Batavia massacre)은 현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해당하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베이커스 컴퍼니, VOC)의 식민지였던 바타비아(당시 공식 명칭)에서 발생한 대규모 학살 사건이다. 1740년 10월 말부터 11월 초에 걸쳐 VOC 당국이 주도한 폭력으로, 주로 중국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약 10,000명에서 15,000명에 이르는 인구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배경

18세기 초, 바타비아는 VOC의 무역 중심지였으며, 특히 중국인 이주민이 상업 활동을 통해 급격히 증가하였다. 173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중국인 인구가 현지 인구의 약 1/3을 차지했으며, 이들은 주로 무역·수공업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VOC는 세금 및 무역 독점을 강화하면서 중국인들의 경제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였다.

동시에, VOC는 군사적·재정적 위기에 직면했으며, 1740년 초에는 식량 부족과 전염병이 겹치면서 사회적 불안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VOC는 중국인들을 ‘경제적 위협’ 및 ‘사회적 불안 요소’로 규정하고, 차별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사건 전개

1740년 10월 21일, VOC의 총독인 마틴 스테레프스(Martin van der Stel)는 ‘중국인들의 불법 무역 및 세금 체납’이라는 명목으로 대규모 체포와 구금을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수천 명의 중국인 남성이 체포되었으며, 체포된 사람들은 강제 노동에 투입되거나 감옥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체포와 구금이 진행되는 동안, VOC 당국은 ‘반란 위험’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폭력적인 진압을 결정하였다. 10월 28일부터 11월 3일까지 약 일주일에 걸쳐 VOC 군대와 현지 군인, 그리고 일부 네덜란드인 정착민들이 거리로 나서면서, 대규모 살해와 약탈이 발생하였다.

학살은 주로 바타비아 중심가와 차이나타운(현대의 카르탄가) 지역에서 집중되었으며, 여성·어린이까지 포함한 광범위한 인구가 피해를 입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일부 지역에서는 사망자 수가 5,000명에 달했으며, 전체 사망자 수는 10,000명에서 15,000명 사이로 추정된다. 정확한 사망자 수는 당시 기록이 파손되거나 조작된 경우가 많아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결과 및 영향

학살 직후 VOC는 남은 중국인 인구에 대해 ‘재정착 정책’을 시행하였다. 살아남은 중국인들은 강제 이주를 당하거나, 고용 조건이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노동에 종사해야 했다. 또한, VOC는 학살 이후에도 중국인 상인들에 대한 세금과 통제를 강화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바타비아 내에서 중국 공동체와 네덜란드 식민 정부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1740년 바타비아 대학살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식민 통치 하에서 발생한 대표적인 인종·경제적 갈등 사례로 평가받으며, 이후 동인도 지역의 식민 정책과 인구 이동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로 인용된다.

참고 문헌 및 기록

  • “The Chinese Massacre of Batavia, 1740”, Journal of Southeast Asian Studies, 1998.
  • VOC 아카이브(네덜란드 국립 아카이브) – 1740년 사건 관련 문서.
  • 김정희, 동인도 식민사 연구, 서울대학교 출판부, 2015.

※ 사망자 수와 구체적 사건 전개의 일부 세부 사항은 당시 기록의 불완전성 및 상이한 사료 간 차이로 인해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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