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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cm sFH 18

15 cm sFH 18(15 cm schwere Feldhaubitze 18)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국방군(Wehrmacht)의 사단급 중야포(重野砲)로 사용된 149mm 견인식 곡사포이다. 독일어 명칭 "schwere Feldhaubitze"는 "중(重) 야전 곡사포"라는 뜻이며, 별명은 "Immergrün"(상록수)이었다. 10.5 cm leFH 18과 함께 독일 보병사단의 표준 화포 체계를 이루었으며, 더 많았던 10.5cm 곡사포에 비해 개수는 적었으나 탄 중량과 파괴력이 커 독일 보병 사단의 핵심 화력 지원 수단으로 평가된다.

이 곡사포는 1926년부터 1930년까지 라인메탈(Rheinmetall)과 크루프(Krupp)에 의해 비밀리에 개발되었으며, 1935년 5월 23일 공식적으로 도입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의 15 cm sFH 13을 대체한 것으로, 전작보다 무게가 약 두 배로 늘었고, 포구 속도는 40% 증가했으며, 최대 사거리는 약 4.5km 증가하고, 분할식 포가(split-trail carriage) 채택으로 방향 사계(射界)가 12배로 확대되었다. 구경은 149mm(5.9인치)이며, 표준 고폭탄의 무게는 약 43.5kg이었다. 최대 사거리는 약 13,250m이나, 실전에서는 과도한 약실(藥室) 침식 문제로 일부 추진 장약 사용이 제한되어 실질적으로 약 9,725m로 한정되기도 하였다.

특징적인 점으로, 이 화포는 사거리 연장용 로켓 보조탄(rocket-assisted projectile, RAP)을 최초로 사용한 화포 중 하나로 알려져 있으며, 1941년에 도입된 15 cm RGr 19 탄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 로켓 보조탄은 정확도가 낮고 폭약 적재량이 줄어드는 문제로 단기간 사용 후 퇴역하였다. 또한 1942년부터는 포구 제퇴기(muzzle brake)와 교체 가능한 약실 라이너를 장착한 개량형 sFH 18M이 생산되었다.

독일군은 전쟁 발발 시점(1939년)까지 약 1,353문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총 생산량은 약 6,756문으로, 1944년에 연간 생산량이 2,295문으로 정점에 달했다. 생산 공장으로는 베를린-슈판다우의 슈프레베르크, 아우크스부르크의 MAN, 바트바름브룬의 되리스-퓔너, 슬로바키아 두브니차의 슈코다 공장 등이 있었다.

실전 사용 이력을 보면, 첫 실전 투입은 중일전쟁 당시 중국 국민혁명군에 의해 이루어졌다. 중국은 sFH 18/32L 24문을 1937년까지 인도받았고, 이후 1937~1938년 사이 추가로 sFH 18 48문을 도입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동부 전선에서 소련군 화포에 사거리에서 열세를 드러내는 문제가 있었으나, 독일 전역에서 폭넓게 운용되었다. 전후에는 불가리아, 루마니아, 포르투갈,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 핀란드 등 여러 국가에서 계속 운용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소련식 152mm 포탄을 사용하도록 개조된 M18/46형이 1980년대 후반까지 보유되었고, 핀란드에서는 152 H 88-40으로 현대화되어 2007년까지도 예비용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

파생형으로는 마차 견인용 sFH 18(포신과 포가로 분해 운반 가능), 차량 견인용 sFH 18(für Kfz.), 포구 제퇴기를 장착한 sFH 18M, 경량화 시도형 sFH 36, 사거리 연장형 sFH 18/40 등이 있으며, 자주포형으로는 후멜(Hummel)이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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