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350년대는 1350년부터 1359년까지의 10년 기간을 의미한다. ‘14세기 중반’에 해당하며, 세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변동이 일어났던 시기이다.
개요 1350년대는 서양에서 흑사병의 여파가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백년전쟁이 격화되던 시기였다. 동양에서는 중국에서 원명 교체기의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었으며, 이 여파는 한반도의 고려에까지 미쳐 공민왕의 개혁 정치와 홍건적의 침입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일본에서는 남북조 시대의 내전이 지속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기존 질서가 동요하고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전환기적 성격을 띠었다.
어원/유래 ‘1350년대’라는 표현은 특정 연도인 ‘1350년’에 복수 또는 시기적 의미를 나타내는 접미사 ‘-대(代)’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는 1350년을 기점으로 그 이후 9년간을 포함하는 10년간의 시기를 통칭하는 일반적인 연대 표기 방식으로, 특정 사건이나 유래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시간 단위를 지칭하는 언어적 관습에 따른 것이다.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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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 흑사병의 여파 지속: 1347년부터 1351년까지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 1차 대유행 이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충격이 지속되었다. 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 봉건 제도의 동요, 농노 해방 가속화 등이 나타났으며, 이는 중세 유럽 사회의 변화를 촉진하는 요인이 되었다.
- 백년전쟁의 격화: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시기였다. 특히 1356년 푸아티에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흑태자가 프랑스군을 대파하고 프랑스 국왕 장 2세를 포로로 잡는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는 프랑스 사회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 신성 로마 제국과 금인칙서: 1356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4세(보헤미아 국왕 카렐 1세)가 금인칙서(Golden Bull)를 반포하여 제국의 7선제후 제도와 황제 선출 과정을 법적으로 명문화했다. 이는 제후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황제 선출의 안정화를 꾀한 조치였다.
- 오스만 제국의 성장: 아나톨리아에서 성장하던 오스만 튀르크가 발칸반도로 진출하기 시작하며 비잔티움 제국에 대한 압박을 가중시키던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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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고려 말)
- 공민왕의 개혁 정치: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이 즉위하여 원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주적인 개혁 정치를 추진하던 시기였다. 반원 정책과 더불어 권문세족의 횡포를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 홍건적의 침입: 원명 교체기의 혼란 속에서 중국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군인 홍건적이 1359년에 고려를 침입하여 서경(평양)을 함락시키고 수도 개경까지 위협하는 등 큰 피해를 입혔다. 이로 인해 공민왕이 복주(안동)로 피난하기도 했다.
- 신흥 무인 세력의 성장: 홍건적과 더불어 왜구의 침입이 잦아지면서 이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최영, 이성계 등 새로운 무인 세력이 부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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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원명 교체기)
- 원나라의 쇠퇴와 농민 봉기: 원나라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면서 홍건적의 난을 비롯한 대규모 농민 봉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시기였다. 이는 원나라의 멸망과 명나라 건국의 토대가 되었다.
- 주원장의 등장: 홍건적 출신인 주원장(朱元璋)이 강남 지역에서 세력을 키우며 명나라 건국의 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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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남북조 시대)
- 남북조 시대의 지속: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가 세운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와 고다이고 천황(後醍醐天皇)을 지지하는 남조 세력 간의 내전이 격화되던 시기였다. 전국적인 혼란 속에서 무사 세력의 힘이 더욱 커졌다.
관련 항목
- 14세기
- 흑사병
- 백년전쟁
- 푸아티에 전투
- 금인칙서
- 공민왕
- 홍건적의 난
- 원명 교체기
- 주원장
- 남북조 시대 (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