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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도 의군

13도 의군(十三道義軍)은 대한제국 말기인 1909년(융희 3년) 6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연해주)에서 조직된 항일 의병부대이다. '십삼도의군' 또는 '대한13도의군(大韓十三道義軍)'이라고도 불린다.

배경 및 결성

1907년 정미칠조약 체결 이후 국내에서의 항일 활동이 더욱 어려워지자, 민족운동가들은 국외로 망명하여 항일투쟁의 근거지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당시 주요 망명지 가운데 하나였으나, 그곳에 모인 여러 의병 세력이 각기 독립된 상태로 활동하고 있어 효과적인 항일투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유인석(柳麟錫)·이상설(李相卨)·이남기(李南基)·이범윤(李範允) 등이 주축이 되어 흩어진 의병 세력을 하나로 통합, 13도 의군을 결성하였다.

조직 체계

도총재(都總裁)에는 유인석이 추대되었다. 그 아래로 창의총재(彰義總裁)에 이범윤, 장의총재(壯義總裁)에 이남기, 도총소참모(都總所參謀)에 우병렬(禹炳烈), 도총소의원(都總所議員)에 홍범도(洪範圖)·이진룡(李鎭龍) 등이 각각 선임되었다. 또한 국내의 애국계몽운동을 주도하던 신민회(新民會)의 주요 간부인 안창호(安昌浩)·이갑(李甲) 등이 도총소의원으로, 이상설은 외교대원(外交大員)으로 각각 참여하였다. 이는 그동안 전술을 달리해 온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이 협력하여 공동전선을 구축한 사례로 평가된다.

13도 의군은 국내 각 도마다 총재·총령·참모·총무·소모(召募)·규찰(糾察)·통신 등의 임원을 두고, 도총재 휘하에 도 단위의 총재를 편성하여 국내까지 조직을 확대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활동 및 해체

1910년 한일병합(경술국치) 이후 실질적인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이상설 등과 함께 두만강 연안으로 진격하려 했으나, 일제가 블라디보스토크가 항일투쟁의 근거지로 변하는 것을 저지하고자 러시아에 강력히 항의하여 유인석이 러시아 관헌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1915년 유인석이 펑톈성(奉天省, 현재의 랴오닝성)에서 병사하면서 구심점을 잃고 해체되었다.

참고: 13도 창의군과의 구분

'13도 의군'은 1907년 국내(경기도 양주)에서 조직된 '13도 창의군(十三道倡義軍)'과는 다른 조직이다. 13도 창의군은 정미칠조약과 군대 해산에 반발하여 이인영·이은찬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한 국내 연합 의병부대로, 서울 진공 작전을 목표로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반면 13도 의군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근거지로 하여 해외에서 조직된 항일 의병부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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