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1157년은 서력기원(西曆紀元)으로 1157번째 해를 의미한다. 율리우스력으로 시작하는 평년(平年)이며, 12세기의 중반에 해당하는 연도이다.
개요 서기 1157년은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진행되던 시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려, 금나라, 남송, 일본 등에서 각기 다른 흐름을 보였고,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 잉글랜드, 이베리아 반도 등에서 왕권 강화 및 영토 재편이 활발했다.
- 고려: 의종(毅宗) 재위 11년째로, 문신 귀족 중심의 정치와 왕실의 사치로 인해 무신들의 불만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당시 김돈중(金敦中) 등의 전횡이 심화되었으며, 이는 훗날 무신정변(武臣政變)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 금나라: 해릉왕(海陵王) 완안량(完顔亮)의 통치기였으며, 그는 남송을 정벌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내부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체제를 정비하던 시기였다.
- 남송: 고종(高宗)의 재위 기간으로, 금나라와의 화친 관계를 유지하며 내부적으로는 재정 문제를 해결하고 통치 안정을 꾀하던 시기였다. 항금파와 주화파의 대립이 지속되었다.
- 일본: 고시라카와 천황(後白河天皇)이 재위 3년째였으며, 직전인 1156년에 발생한 호겐의 난(保元の乱)으로 인해 천황 중심의 정치 체제가 흔들리고 무사 계급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던 전환기였다.
- 유럽:
-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Friedrich I Barbarossa) 황제는 이탈리아 정책에 주력하며 교황 및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과의 관계를 정립하려 했다.
- 잉글랜드의 헨리 2세(Henry II)는 즉위 3년째로, 플랜태저넷 왕조의 기초를 다지며 왕권 강화에 힘썼다.
- 레온-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7세(Alfonso VII)가 이 해에 사망하며 그의 두 아들이 레온과 카스티야 왕국을 분할 통치하게 되어 이베리아 반도의 정세가 재편되었다.
- 덴마크에서는 "로스킬레의 피의 축제(Bloodfeast of Roskilde)"를 통해 스베인 3세(Sweyn III)가 암살당하고, 발데마르 1세(Valdemar I)가 단일 통치권을 확립하여 덴마크의 혼란기를 종식시키고 중흥기를 열었다.
- 중동: 시리아 북부의 하마(Hama) 지역에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당시 이 지역은 셀주크 제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으며, 십자군 국가들과의 대립이 계속되던 상황이었다.
어원/유래 "1157년"은 숫자를 사용하여 특정 연도를 지칭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표기이다. '1157'은 서력기원(西曆紀元)을 기준으로 기원후 1157번째 해를 의미하며, '년(年)'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주기(약 365.25일)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 단위이다. 서력기원은 예수 탄생을 기원(紀元)으로 삼는 연대 계산 방식이다.
특징 1157년은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 정치적 전환기: 유럽과 아시아 모두에서 기존 질서가 흔들리고 새로운 권력이 부상하거나 기존 권력이 강화를 모색하던 시기였다. 특히 덴마크와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왕국의 분할 또는 통합을 통해 지배 구조가 재편되었다.
- 무신 세력의 성장: 고려와 일본 모두에서 문신 중심의 통치가 약화되고 무신(무사) 세력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는 조짐을 보였다.
- 자연재해: 시리아 하마 지진과 같이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당시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문화적 배경: 12세기는 중세 유럽의 르네상스 시기로 불리며 학문과 예술이 발전하고 도시가 성장하던 시기였으나, 1157년에는 주로 정치적 안정과 영토 확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관련 항목
- 12세기
- 서력기원
- 율리우스력
- 고려 의종
- 금 해릉왕
- 남송 고종
- 일본 고시라카와 천황
-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 알폰소 7세
- 발데마르 1세
- 호겐의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