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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년

1126년은 서력 기원 연도로, 고려 인종 4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정치적 변동이 여러 차례 발생한 해로 평가된다.

고려의 정치적 격변: 이자겸의 난

1126년 고려에서는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자겸(李資謙)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일으킨 반란이 발생하였다. 이자겸은 예종과 인종에게 자신의 딸을 왕후로 들이며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으며, 특히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이기도 하였다. 인종이 측근 세력을 동원해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자, 이자겸은 무장 척준경(拓俊京)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척준경의 군사적 배경이 깊이 연계되었기에 이·척(李拓)의 난이라고도 불린다.

반란 과정에서 왕궁이 불에 타는 등 큰 혼란이 발생했으나, 인종은 최사전(崔思全)의 계략을 수용하여 척준경을 이자겸과 갈라서게 하였고, 결국 이자겸은 유배되어 그해 12월에 사망하였다. 이자겸의 난은 고려 문벌 귀족 사회의 내부 분열을 드러냄으로써 귀족 사회 자체의 동요를 촉진한 계기가 되었다.

금나라의 남하와 북송의 위기

같은 해 동아시아에서는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가 북송(北宋)을 압박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1125년 거란의 요(遼)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는 송나라를 침공하여 그해 겨울 북송의 수도 개봉(開封)을 포위하였다. 이는 이듬해인 1127년 금나라가 송의 휘종과 흠종 두 황제를 포로로 끌고 가는 '정강의 변'(靖康之變)으로 이어지는 직접적 배경이 되었다.

고려는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금나라와의 관계 설정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결국 금에 사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불만은 이후 서경 천도론과 금국정벌론으로 표출되어 묘청의 난(1135)의 배경이 되었다.

역사적 의의

1126년은 고려 내부에서는 이자겸의 난으로 대표되는 문벌 귀족 세력의 분열과 정치적 혼란이 표면화된 해였고, 국제적으로는 금나라의 등장으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가 재편되던 시점이었다. 이자겸의 난 이후 고려에서는 왕권 강화와 정치 개혁을 둘러싸고 개경의 보수적 문벌 귀족 세력과 서경 출신의 개혁 세력 간의 대립이 심화되었으며, 이러한 갈등은 이후 고려 정치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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