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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사건

10·26 사건은 1979년 10월 26일 저녁 7시 40분경,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에 위치한 중앙정보부 안가(安家)에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金載圭)가 당시 대통령 박정희(朴正熙)를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궁정동 사건', '10·26 사태' 등으로도 불린다.

역사적 배경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는 18년간 장기 집권하며 권위주의적 통치를 강화해 왔다. 특히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선포하면서 억압적인 비민주적 정치 체제인 유신체제가 수립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인한 경제적 모순, 인플레이션 심화, 노동자와 농민의 소외감 증대 등 정치·경제적 위기가 누적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카터 행정부와의 인권 문제 및 미군 철수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심화되었다.

1978년 동일방직 사건, 1979년 YH 사태 등 생존권 투쟁이 이어졌고,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창원 지역에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부마항쟁이 발생하였다. 부마항쟁의 진압 방식을 둘러싸고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車智澈)은 강경 진압을,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취하면서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심화되었다. 박정희가 차지철의 강경책을 수용하자, 진퇴 위기에 몰린 김재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의 경과

1979년 10월 26일 저녁, 궁정동 안가에서 만찬이 열렸다. 자리에는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 등이 참석하였다. 만찬 도중 박정희가 부마항쟁의 책임을 중앙정보부의 정보 부재에 돌리고, 차지철도 중앙정보부의 무능함을 지적하면서 갈등이 고조되었다. 이에 김재규는 부하 경호원들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권총으로 살해하였다. 또한 정인형 대통령 경호처장, 안재송 대통령 경호부처장, 김용섭 대통령 경호관, 김용태 경호실 차량운행계장 등도 함께 살해되었다.

사건 이후의 전개

10·26 사건 직후 최규하(崔圭夏) 과도정부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였다. 10월 말 군부 고위층은 유신헌법의 폐기를 결정하였고, 이후 전두환(全斗煥)을 필두로 한 신군부가 12·12 사태를 통해 실권을 장악하면서 제5공화국이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김재규는 내란 목적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1980년 사형이 집행되었다.

의의와 평가

10·26 사건은 유신체제를 붕괴시킨 결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다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이 사건은 김재규가 주장한 바와 같은 '민주화를 위한 의거'라기보다는 차지철과의 개인적 갈등이 표출된 우발적 범행에 가깝다는 견해가 제시된다. 또한 이 사건이 즉각적인 민주화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신군부의 집권을 초래하여 권위주의 통치가 연장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한편 장기적으로는 유신체제의 붕괴와 군부독재 종식의 한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찾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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