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년 4월 20일 ~ 1945년 4월 30일)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독일 정치인으로, 1933년부터 1945년 자살할 때까지 나치 독일의 독재자였다. 그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을 이끌고 권력을 장악하여 1933년 독일 총리가 된 이후 1934년 퓌러(지도자)로 취임했다.
생애 초기: 히틀러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브라우나우암인에서 태어나 린츠 근방에서 성장했다. 빈 미술 아카데미에 두 차례 지원했으나 낙방했고, 이후 빈에서 수채화를 팔며 생활했다. 1913년 독일 뮌헨으로 이주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바이에른 육군에 자원 입대하여 서부 전선에서 연락병으로 복무했고, 1급 및 2급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정치적 부상: 전후 독일의 패배와 베르사유 조약에 대한 불만 속에서 1919년 독일 노동자당(DAP)에 가입했고, 1921년 나치당의 당대표가 되었다. 1923년 뮌헨 폭동(맥주홀 폭동)을 주도했으나 실패하여 투옥되었고, 이 기간 동안 자서전이자 정치 선언문인 《나의 투쟁》(Mein Kampf)을 저술했다. 1924년 석방된 이후,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 비난, 반유대주의, 반공주의, 범독일주의를 내세우며 대중의 지지를 확대했다.
권력 장악: 1933년 1월 30일,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에 의해 독일 총리로 임명되었다. 1933년 2월 국가의회 화재 사건을 계기로 비상령을 발동하여 공산당을 탄압했고, 3월 전권 위임법을 통과시켜 사실상의 독재 권한을 획득했다. 1934년 힌덴부르크 사망 후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여 퓌러 겸 국가수상이 되었으며, 군대의 충성 서약을 자신에게 직접 바치도록 했다.
나치 독일 통치: 히틀러는 대규모 재무장 정책과 인프라 건설(아우토반 등)을 추진하여 대공황 이후 실업률을 낮추었다. 1935년 뉘른베르크 인종법을 제정하여 유대인을 비롯한 비(非)아리아인에 대한 체계적인 차별을 법제화했다. 외교적으로는 베르사유 조약을 잇달아 위반하며 라인란트 재무장(1936년), 오스트리아 합병(안슐루스,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 합병(1938년)을 단행했다.
제2차 세계 대전: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을 통해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초기에는 폴란드, 프랑스, 저지대 국가들을 신속히 점령하며 유럽 대부분을 장악했으나, 1941년 소련 침공(바르바로사 작전) 이후 전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미국에 선전포고했다. 전쟁 말기에는 군사 작전에 직접 개입하며 전략적 판단을 내렸으나, 스탈린그라드 전투, 쿠르스크 전투 등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홀로코스트: 히틀러의 인종 차별적 이념 아래 나치 정권은 약 600만 명의 유대인과 수백만 명의 슬라브인, 로마인, 장애인, 정치적 반대자 등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홀로코스트). 이는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의 집단 학살이었다.
최후: 1945년 4월, 소련군이 베를린을 포위하자 히틀러는 베를린 지하 벙커(퓌러붕커)에서 에바 브라운과 결혼한 다음 날인 4월 30일, 권총 자살했다. 그의 시신은 휘발유로 불태워졌다.
역사적 평가: 역사학자 이언 커쇼는 히틀러를 "현대 정치의 사악의 화신"이라고 묘사했다. 히틀러의 지도 아래 나치 정권은 약 1,930만 명의 민간인과 전쟁 포로를 의도적으로 살해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전체 사망자는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약 2,870만 명에 달한다. 히틀러와 나치즘은 전후 독일과 세계사에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현재 많은 유럽 국가에서 나치즘 선전과 홀로코스트 부정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