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노마에(일본어: 姫の前, ひめのまえ)는 가마쿠라 시대 초기의 여성이다. 생년은 미상이며, 조겐 원년 3월 29일(1207년 4월 27일)에 사망하였다. 가마쿠라 막부의 고케닌(御家人)인 히키 토모무네(比企朝宗)의 딸이다. 가마쿠라 막부 제2대 싯켄(執権)이었던 호조 요시토키(北条義時)의 정실(正室)이다. 자녀로는 나고에류(名越流)의 시조인 토모토키(朝時), 고쿠라쿠지류(極楽寺流)의 시조인 시게토키(重時), 그리고 타케도노(竹殿) 등이 있다.
생애
히메노마에는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頼朝)의 오오쿠라 고쇼(大倉御所)에서 근무하는 여관(女官)이었다. 『아즈마카가미(吾妻鏡)』에는 "히키 토나이 토모무네의 딸로, 당시 권위가 비할 데 없이 높은 뇨보(女房)였다. 특히 어의(御意)에 맞서는 일이 있었다. 얼굴이 매우 아름답다"고 기록되어 있다. 요리토모가 마음에 들어 하는 아름다운 인물이었으며, 줄을 설 사람이 없을 정도로 권세 있는 뇨보였다고 전해진다.
호조 요시토키가 1년여 동안 히메노마에에게 연서(戀書)를 보냈으나 히메노마에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이를 지켜본 요리토모가 요시토키에게 "절대 이혼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기청문(起請文)을 쓰게 하여 두 사람 사이를 주선하였다고 한다. 겐큐 3년(1192년) 9월 25일, 히메노마에는 요시토키에게 시집갔고, 겐큐 4년(1193년)에 차남 토모토키, 겐큐 9년(1198년)에 3남 시게토키를 낳았다.
겐닌 3년(1203년) 9월, 히키 요시카즈의 변(比企能員の変)이 일어나 친정인 히키 씨가 남편 요시토키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멸망당했다. 『아즈마카가미』에서는 이후의 히메노마에에 관한 기록이 확인되지 않으나, 『메이게츠키(明月記)』 가로쿠 2년(1226년) 11월 5일조에 따르면 "미나모토노 토모치카의 자식(미나모토노 스케미치)은 호조 토모토키의 동복동생으로, 막부로부터 임관 추거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스케미치는 겐큐 원년(1204년) 출생이므로, 히메노마에는 히키의 난 직후 요시토키와 이혼하고 상락(上洛)하여 미나모토노 토모치카(源朝雅)와 재혼해 스케미치를 낳은 것으로 추정된다. 덴푸쿠 원년(1233년)에 토모토키의 유자(猶子)가 된 토모치카의 차남 미나모토노 스케토키(源輔時)도 히메노마에의 소생으로 보인다.
『메이게츠키』 조겐 원년(1207년) 3월 30일조에는 전날 미나모토노 토모치카 소장(所蔵)의 아내가 사망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로 보아 히메노마에는 재혼 후 약 3년 만에 교토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작품
- TV 드라마 『풀이 타오르다(草燃える)』(1979년, NHK 대하드라마) - 노하기 역, 배우 사카구치 료코
- TV 드라마 『가마쿠라도노의 13인(鎌倉殿の13人)』(2022년, NHK 대하드라마) - 히나 역, 배우 홋타 마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