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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그쿠티 난도르

히데그쿠티 난도르(Hidegkuti Nándor, 1922년 3월 3일 ~ 2002년 2월 14일)는 헝가리의 축구 선수이자 축구 감독이다. 헝가리식 이름 표기법에 따라 성을 앞에 쓴 이름이며, 서양식 표기로는 난도르 히데그쿠티(Nándor Hidegkuti)라고도 한다.

생애와 선수 경력

히데그쿠티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나 1942년 에레크트로모시 FC(Elektromos FC)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1946년부터 1958년까지 MTK 헝가리아 FC(MTK Hungária FC)에서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보냈다. 1949년 헝가리가 공산주의 국가가 된 이후 MTK는 비밀경찰(ÁVH)의 관리를 받게 되면서 클럽 이름이 텍스타일 SE(Textiles SE), 바슈티아 SE(Bástya SE), 뵈뢰시 로보고 SE(Vörös Lobogó SE) 등으로 여러 차례 변경되었다.

그는 공격수 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특히 '딥 라잉 센터 포워드'(deep-lying centre-forward) 역할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는 현대 축구의 '폴스 나인'(false 9)과 유사한 포지션으로, 전방에서 깊숙이 내려와 중원에서 공을 받아 다른 공격수들에게 배급하는 역할이었다. 당시 이 전술은 혁신적인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상대 수비의 중심을 끌어내는 효과를 통해 상대 수비진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국가대표팀 활동

히데그쿠티는 1945년부터 1958년까지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69경기에 출전하여 39골을 기록했다. 그는 1950년대 '매직 마자르' 또는 '골든 팀'(Golden Team)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헝가리 대표팀의 핵심 선수였으며, 같은 팀에는 푸슈카시 페렌츠(Ferenc Puskás), 코치시 샨도르(Sándor Kocsis), 치보르 졸탄(Zoltán Czibor), 보지크 요제프(József Bozsik)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53년 11월 25일, 히데그쿠티는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잉글랜드와의 친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헝가리의 6-3 승리를 이끌었다. 이 경기는 잉글랜드가 자국에서 외국 팀에게 처음으로 패배한 경기로 기록되었으며, 축구 역사상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헝가리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으며, 1954년 FIFA 월드컵에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1954년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서독을 8-3으로 대파하는 등 활약했으나, 결승전에서 서독에 2-3으로 패배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당시 서독 감독 제프 헤어베어거(Sepp Herberger)는 히데그쿠티를 헝가리 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로 지목하고 결승전에서 그를 봉쇄하기 위한 전술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독 경력

은퇴 후 히데그쿠티는 헝가리, 이탈리아, 폴란드, 이집트의 클럽에서 감독으로 활동했다. 1961년에는 이탈리아의 ACF 피오렌티나를 이끌고 초대 UEFA 컵 위너스 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며, 결승전에서 레인저스를 4-1로 물리쳤다. 1963년에는 죄르 ETO FC를 이끌고 헝가리 리그 우승을 달성했고, 1964-65 시즌 유러피언컵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으나 준우승 팀인 벤피카에게 패배했다. 1973년부터 1980년까지는 이집트의 알아흘리(Al Ahly)를 지도하며 여러 차례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5-3-2 포메이션을 도입하기도 했다.

수상 및 평가

히데그쿠티는 선수와 감독으로서의 모범적인 태도를 인정받아 1993년 FIFA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했다. 그는 2002년 2월 14일 심장 및 폐 질환으로 사망했다. 그의 사후 MTK 헝가리아 FC는 그의 업적을 기려 구단 홈 구장의 명칭을 '히데그쿠티 난도르 슈터디온'(Hidegkuti Nándor Stadium)으로 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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