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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다스페스 전투

히다스페스 전투(Battle of the Hydaspes)는 기원전 326년 5월,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더 대왕)가 이끄는 마케도니아 왕국군과 파우라바 왕국의 라자(왕) 포로스(포루스)가 이끄는 인도 제후 연합군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젤룸강 전투(Battle of Jhelum) 또는 제1차 젤룸 전투(First Battle of Jhelum)라고도 불린다.

배경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28년 아케메네스 왕조의 마지막 군대를 격파한 후, 제국을 인도 방면으로 확장하기 위해 기원전 327년 인도 원정을 시작했다. 주력군은 카이버 고개를 통해 진입했고, 알렉산드로스가 직접 지휘하는 일부 병력은 북쪽 길을 통해 아오르노스 요새를 점령했다. 이듬해 봄, 알렉산드로스는 탁실라 왕 탁실레스와 동맹을 맺고 그의 적대 세력이었던 히다스페스 강 건너편의 포로스 왕에게 진격했다.

장소와 시기

전투는 히다스페스강(현재 파키스탄 펀자브 지방의 젤룸강) 변에서 일어났다. 당시 강폭은 약 800m에 달했으며 장마로 인해 강물이 불어난 상태였다. 고대에는 강이 현재와 다른 경로로 흘렀기 때문에 정확한 격전지 위치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며, 가장 유력한 위치는 젤룸 시 남쪽으로 추정된다.

병력 규모

고대 사료에 따라 병력 규모는 차이가 있다. 마케도니아군은 보병 약 40,000명, 기병 약 5,000~7,000기를 보유한 것으로 전해진다. 포로스 군은 보병 20,000~50,000명, 기병 2,000~4,000기, 전투코끼리 85~200마리, 전차 약 1,000대를 보유한 것으로 기록된다.

전투 경과

알렉산드로스는 정면 도하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약 27km 상류에 있는 도하 지점을 선정했다. 그는 야간에 반복적인 기동으로 포로스의 주의를 분산시킨 후, 장마로 불어난 강을 건너는 기습 작전을 실행했다. 이는 알렉산드로스의 군사적 걸작 중 하나로 평가된다.

알렉산드로스는 먼저 포로스의 아들이 이끄는 선발대를 격파한 후, 본대와 교전했다. 포로스는 전면에 전투코끼리를 배치하고 양측면에 기병을 배치한 전열을 갖추었다. 알렉산드로스는 기병으로 측면을 공격하고, 코에노스 장군에게 우회 기동을 명령하여 인도군의 우익과 배후를 공격하게 했다. 인도군은 양면 공격을 받아 혼란에 빠졌고, 부상당한 코끼리들이 아군 진영으로 돌진하여 큰 혼란을 초래했다. 마케도니아군은 중보병(팔랑크스)으로 정면에서 압박하고 기병으로 후방을 차단하는 '망치와 모루' 전술로 인도군을 궤멸시켰다.

결과

알렉산드로스는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으나, 이는 그의 원정 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투 중 하나였다. 마케도니아군의 사상자는 약 1,000명(아리아노스 기록에 따르면 전사 약 310명)으로 추정되며, 인도군은 약 12,000~23,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포로스는 전투 중 포로가 되었으나, 알렉산드로스는 그의 용맹에 감명받아 왕으로서 대우하고 그의 영토를 그대로 통치하도록 허용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이 전투 후 승리를 기념하여 니카에아(Nikaia, 그리스어로 '승리')라는 도시를, 그리고 전투 중 또는 이후에 죽은 자신의 애마 부케팔로스를 기려 부케팔라(Boukephala)라는 도시를 건설했다.

의의

히다스페스 전투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인도 원정 중 마지막 대규모 회전이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는 동쪽으로 더 진군하려 했으나, 히파시스 강(현재의 비아스 강)에서 오랜 원정에 지친 병사들이 더 이상의 진격을 거부함에 따라 되돌아서야 했다. 이 전투는 그리스-마케도니아 문화와 인도 아대륙 간의 접촉을 촉진한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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