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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노 도미코

히노 도미코(日野富子, 1440년 ~ 1496년)는 일본 무로마치 시대의 인물로, 무로마치 막부 제8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足利義政)의 정실이다. 아버지는 내대신(内大臣) 히노 시게마사(日野重政)이며, 제9대 쇼군인 아시카가 요시히사(足利義尚)의 친모이다.

히노 도미코는 무로마치 막부의 권력 구조 내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여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본래 쇼군 요시마사에게 후사가 없어 그의 동생인 아시카가 요시미(足利義視)가 차기 쇼군으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1465년 도미코가 아들 요시히사를 출산하면서 후계 구도에 변화가 생겼다. 도미코는 자신의 아들을 쇼군으로 세우기 위해 유력 다이묘인 야마나 소젠(山名宗全)과 결탁하였으며, 이는 요시미를 지지하던 호소카와 가쓰모토(細川勝元) 측과의 대립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후계 갈등은 1467년 일본의 전국시대(센고쿠 시대)를 여는 단초가 된 오닌의 난(応仁の乱)이 발발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전쟁 기간 중 히노 도미코는 독자적인 경제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교토의 각 관문에 통행세를 부과하여 자금을 확보하고, 전란으로 자금이 부족해진 다이묘들에게 고리로 군자금을 대출해 주는 등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이러한 행보는 당시 민중과 귀족 사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전란으로 파괴된 고쇼(황궁)의 수리비나 막부의 운영 자금을 조달하는 실질적인 재정 관리자 역할을 수행한 측면도 존재한다.

1473년 아들 요시히사가 제9대 쇼군에 취임한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였으나, 아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489년 요시히사가 급사하고, 남편 요시마사마저 이듬해 사망하자 아시카가 요시타네(足利義材)를 옹립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갔으나 이후 다시 갈등을 빚기도 했다. 1496년 5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역사적으로는 권력욕과 재물욕이 강한 인물로 묘사되어 '악녀'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였으나, 현대 역사학계에서는 전란의 혼란 속에서 막부의 재정을 유지하고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하려 했던 여성 정치가로서의 면모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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