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화학교(興化學校)는 1898년 11월 5일 대한제국 시기 서울에 설립된 근대 사립학교이다. 특명전권공사로서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를 둘러보고 귀국한 민영환(閔泳煥)이 외국어와 선진 기술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한 것으로, 당시 대부분의 근대 학교가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설립되었던 것과 달리 조선인이 직접 세운 학교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설립 초기에는 주간·야간 과정을 함께 개설하고, 입학시험을 통해 국문과 한문을 해득한 자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였다. 초등교육보다는 중등교육을 목표로 하여 영어, 산술, 지지(地誌), 역사, 작문, 토론, 체조 등을 가르쳤다. 입학 연령은 15세 이상 30세 미만이었다.
학교 조직은 교장 민영환을 중심으로 교사 임병구(林炳龜), 정교(鄭喬), 남순희(南舜熙)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설립 당시 기금과 운영자금은 김신영(金信營)이 제공하였다. 학제는 보통과와 고등과로 나뉘었으며, 보통과의 졸업 연한은 3년, 고등과는 2년이었다.
설립 초기에는 교과목에서 영어를 중시하였고 일어는 가르치지 않았다. 이후 심상과(尋常科), 특별과와 함께 당시 조선에 전국적인 토지측량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고려하여 측량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양지과(量地科)를 설치하였다. 교육 내용에서는 영어, 일어, 측량술이 강조되었다. 1905년에는 영어와 일본어 과정을 별도로 설치하여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재학생 수는 1899년 12월에 주간 47명, 야간 79명으로 총 126명에 달했으며, 같은 해 12월 말에는 주간 60명, 야간 90명으로 총 150명까지 늘어났다. 1900년 7월 13일자 『황성신문』에는 당시 학생 수가 130여 명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야간 과정이 개설되어 인기가 높았다.
학생 수 증가로 교사(校舍)와 재정이 부족해지자, 민영환 외 여러 유지들이 재산을 출연하여 1899년 8월 현재의 종로구 수송동·청진동 일대인 수진동(壽進洞)으로 학교를 이전하고 교사를 늘리며 학과를 확대하였다.
흥화학교는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도 지교를 설립하였다. 1899년 6월경 대구에 최처규(崔處圭)가 주도하여 사립 흥화학교를 설립하였고, 같은 해 10월에는 안동에도 지교가 설립되어 안동 지방에서 최초로 근대식 교육이 실시되었다.
1905년 민영환이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자결한 뒤에는 교장에 임병항(林炳恒), 부교장 겸 총무 교사에 백상규(白象圭)가 취임하였다. 을사늑약 이후에는 설립 정신을 교육구국(敎育救國)을 위한 인재 양성으로 전환하여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이후 경영 곤란 등의 문제로 황실과 학부(學部)의 보조금, 유지들의 의연금(義捐金) 등으로 겨우 유지되다가, 결국 1911년 폐교되었다.
흥화학교는 독립운동가 여운형(呂運亨)이 1903년 입학하여 물리, 화학, 영어 등을 배웠던 학교로도 알려져 있으며, 대구역사문화대전에 따르면 흥화학교 지교는 대한제국 학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아 영어, 산술, 지리, 역사 등을 40여 명의 학생에게 가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