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평부수(興平副守)는 조선 시대 왕족에게 수여된 봉작(封爵)의 하나로, 구체적으로는 조선 중기의 왕족인 흥평부수 이영(興平副守 李瀛, 1652년 ~ 1714년)을 가리킨다. '부수'(副守)는 조선 왕실에서 왕의 서자나 종친에게 내리던 종4품의 품계에 해당하는 작위이며, '흥평'(興平)은 그 봉호(封號)이다.
흥평부수 이영은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의 증손이자, 선조(宣祖)의 백형(伯兄)인 하원군(河原君)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종실 진양군(珍陽君) 이담령(李聃齡)이며, 어머니는 양녀(良女) 예현(禮賢)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휘(諱)는 영(瀛)이다. 부인은 현감(縣監)을 지낸 강릉인 김진한(金振漢)의 딸인 온인(溫人) 강릉김씨(江陵金氏)이다.
생애를 살펴보면, 1652년(효종 3)에 태어나 흥평부수에 봉작되었다. 1669년(현종 10) 2월 3일 사은(謝恩)을 받았으며, 1676년(숙종 2) 3월 10일 종실(宗室)의 전강(殿講)에 참여하여 숙마 1필을 하사받았다. 1677년(숙종 3)에는 종신(宗臣)의 자격으로 주강(晝講)에 참여하였다. 1680년(숙종 6)에는 종부시(宗簿寺)로부터 공회(公會) 불참을 이유로 추고(推考) 대상이 되었고, 1696년(숙종 22)에는 종묘 친제(親祭)에 불참하여 파직되었다가 같은 해 12월 서용(敍用)되었다. 1710년(숙종 36)에도 종친부(宗親府)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가 다시 복직되는 등 관직 생활에서 수차례 기복을 겪었다. 1714년(숙종 40) 10월 12일 향년 63세로 별세하였으며, 인천광역시 중림역(中林驛) 임좌(壬坐)에 예장(禮葬)되었다.
자녀로는 장남 이시욱(李時郁), 2남 이시정(李時鼎), 3남 이시득(李時得)과 세 딸을 두었다. 장남 이시욱은 중부(仲父)인 승평도정(昇平都正) 이윤(李潤)에게 출계(出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