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원(興元)은 신라 중대(中代)의 진골 귀족이자 장군으로, 성은 김(金)씨이며 김흥원(金興元)으로도 기록된다. 관등은 파진찬(波珍湌)에 이르렀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문왕 즉위년(681년) 조에 따르면, 신문왕(神文王)이 즉위한 지 약 한 달 만에 "소판(蘇判) 김흠돌(金欽突), 파진찬 흥원(興元), 대아찬(大阿湌) 진공(眞功) 등이 반역을 도모하다가 처형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흥원은 신문왕의 장인인 김흠돌과 함께 반란에 가담한 혐의로 처형된 것으로, 이 사건은 신문왕이 즉위 직후 진골 귀족 세력을 숙청하여 왕권을 강화하려 한 조치의 일환이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흥원은 668년 고구려 평양성 전투에 계금당 총관(罽衿幢摠管)으로 참전하여 고구려 멸망에 기여하였으며, 이후 나당 전쟁(670년)에서도 활동하였으나 전투 중 퇴각한 일로 문무왕에게 사형을 면하고 관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이후 다시 등용되어 대아찬에 올랐으나, 문무왕 말년부터 김흠돌 등과 함께 반란을 모의하다가 신문왕 즉위 직후 발각되어 처형된 것으로 전해진다.
흥원에 관한 기록은 주로 『삼국사기』 신라본기와 일부 금석문 관련 자료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의 구체적인 생애와 가계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