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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아관음

흥아관음(興亞觀音, 일본어: 興亜観音 코아칸논[*])은 일본 시즈오카현 아타미시 이즈산(伊豆山)에 위치한 관음보살상 및 이를 모신 종교 법인(례배산 흥아관음, 禮拜山興亞觀音)을 가리킨다. 1940년, 당시 중지나 방면군 사령관이었던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 육군대장이 세운 불상으로, 일본군과 중국군 전사자를 함께 추모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명칭의 '흥아'(興亞)는 '아시아를 흥하게 한다'는 의미로,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대아시아주의(범아시아주의) 및 대동아공영권 이념과 연결되는 개념이다. 마쓰이 이와네는 난징 대학살 당시 중지나 방면군 사령관이었으며, 전후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1948년 사형이 집행되었다.

흥아관음은 일련종(日蓮宗)에서 분리된 법화종진문류(法華宗陣門流) 계통에 속하지만, 독립적인 사원으로 운영되며 종파를 불문하고 참배객을 받아들이고 있다. 창건자 마쓰이 이와네의 지원을 받아 미에현 오와세시의 금강사(金剛寺), 나라현 사쿠라이시의 연대사(蓮臺寺), 도야마현 뉴젠정의 양조사(養照寺)에도 관련 불상이 존재하며, 중화민국과 태국에도 기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5년 이후 오랜 기간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으나, 1990년대 네오내셔널리즘(신내셔널리즘)의 발흥 시기에 재발견되었다. 1994년에는 '흥아관음을 지키는 모임'(興亞觀音を守る會)이 결성되어 흥아관음의 유지 및 관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학술 연구에 따르면, 이 모임의 주요 인물들은 일본의 우익 네트워크 및 '일본회의'(日本会議)의 주요 인물들과 상당 부분 겹친다.

1971년 12월 12일,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東アジア反日武装戦線) 소속 활동가들이 흥아관음상과 인근의 순국칠사지비(殉国七士之碑, A급 전범 7인을 추모하는 비석)를 폭파하려 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에서 순국칠사지비는 파괴되었으나 흥아관음상에 설치된 폭탄은 불발하여 큰 손상은 입지 않았다. 이는 동아시아 반일무장전선의 첫 번째 무장 투쟁 사건으로 기록된다.

흥아관음은 일본의 전쟁사, 내셔널리즘,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논의하는 학술 연구의 소재로도 다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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