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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왕

흥덕왕(興德王, 777년~836년 12월)은 신라의 제42대 국왕으로, 재위 기간은 826년 10월부터 836년 12월까지이다. 성은 김(金)이며, 초명은 수종(秀宗) 또는 수승(秀升)이고, 즉위 후 경휘(景徽)로 개명하였다.

생애 및 즉위 배경

흥덕왕은 원성왕의 장남인 혜충태자 김인겸(惠忠太子 金仁謙)과 성목태후 김씨(聖穆太后 金氏) 사이에서 태어났다. 소성왕과 헌덕왕의 친동생이다. 809년 동복형인 헌덕왕과 함께 정변을 일으켜 조카인 애장왕을 폐위시키고 헌덕왕의 즉위를 도왔으며, 이찬(伊飡)이 되었다. 819년 상대등(上大等)에 임명되었고, 822년 헌덕왕이 후사가 없음을 이유로 태자로 책봉되었다. 826년 10월 헌덕왕이 사망하자 왕위에 올랐다.

치세

흥덕왕은 신라 사회의 총체적인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개혁 정책을 추진하였다.

828년 장보고(張保皐)를 청해진 대사(淸海鎭大使)로 임명하고 군사 1만 명을 주어 청해진(淸海鎭)을 설치하게 하여 해적의 침탈을 막았다. 같은 해 겨울,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大廉)이 차나무 종자를 가져오자 지리산에 심게 하였는데, 이로부터 차 문화가 신라에 크게 유행하게 되었다.

834년에는 교지를 내려 귀족들의 사치를 규탄하고 골품제도에 따라 계급별 복색(服色)·거기(車騎)·기용(器用)·옥사(屋舍) 등의 규정을 강화하여 신분 구분을 엄격히 하였다.

832년 봄과 여름에 심한 가뭄이 들어 왕이 정전에 나가지 않고 음식을 줄였으며 죄수들을 사면하였고, 833년에는 큰 기근과 전염병이 들어 백성들이 많이 사망하였다. 835년에는 김유신(金庾信)을 추봉하여 흥무왕(興武王)으로 하였다.

왕비와 앵무새 설화

흥덕왕이 즉위한 지 두 달 만인 826년 12월, 왕비 장화부인(章和夫人, 후에 정목왕후로 추존)이 사망하자 왕은 몹시 슬퍼하며 후비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삼국유사》에는 흥덕왕과 앵무새에 관한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에서 가져온 앵무새 한 쌍 중 암놈이 죽자, 홀로 남은 숫놈이 슬피 울었다. 왕이 거울을 걸어주자 앵무새는 거울 속의 자신을 짝으로 알고 쪼다가 그림자임을 알고는 슬피 울다 죽었다고 한다.

사망과 후계 문제

836년 12월 흥덕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사망하자, 사촌동생인 균정(均貞)과 균정의 조카 제륭(悌隆)이 왕위를 두고 다투었다. 시호는 흥덕(興德)이며, 왕비 장화부인의 능에 합장되었다. 능은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흥덕왕릉(興德王陵)으로, 비편을 통해 피장자가 흥덕왕임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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