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로닝언(Groningen, 영어식: 그로닝겐)은 네덜란드 북부 흐로닝언 주의 주도이다. 네덜란드 북부 최대 도시로, "북부의 수도"로도 불리며 약 24만 명(2025년 기준)의 인구가 거주하는 네덜란드 제6위의 도시이다. 흐로닝언 광역권의 인구는 약 55만 명이다.
어원
'흐로닝언(Groningen)'의 기원과 의미는 확실하지 않다. 한 민간 전승에 따르면 기원전 453년, 트로이에서 추방된 이들이 그루노(Gruno)라는 신화적 인물의 인도 아래 이 지역에 정착하여 '그루노부르크(Grunoburg)'라는 성을 세웠다고 한다. 현대 학설 중 하나는 '흐로닝언'이 '그로니(Groni) 사람들 사이에'라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흐로닝어(Hunze) 근처 작은 호수의 옛 이름인 '그로네스베커(Gronesbeke)'에서 파생되었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견해는 'groenighe'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여 '푸른 들판'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역사
흐로닝언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인류의 흔적은 기원전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 제국 시기에는 갈리아 벨기카 주둔군의 숙영지가 설치되었다. 1040년에 작성된 문서에 흐로닝언의 존재가 처음 기록되었으며, 1024년에는 위트레흐트 주교령이 되었다. 1284년 한자 동맹에 가입하였고, 1405년 자치 정부를 수립하였다.
1614년에는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인 흐로닝언 대학교(Rijksuniversiteit Groningen)가 설립되었다. 1672년에는 뮌스터 대주교 베르나르트 폰 갈렌이 이끄는 연합군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하였으며, 이 승리는 매년 8월 28일 '흐로닝스 온제트(Gronings Ontzet)' 축제로 기념된다. 1795년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1811년 나폴레옹 제국에 합병되었다가 1813년 해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5년 4월, 캐나다군에 의해 나치 치하에서 해방되었으나 전투 과정에서 시내 중심지인 흐로터 마르크트(Grote Markt) 등이 크게 파괴되었다.
지리 및 기후
흐로닝언은 훈스뤄흐(Hondsrug) 지역의 최북단에 위치한다. 해양성 온대 기후(Cfb)로 네덜란드 북동부에 위치하여 타 주요 도시보다 겨울이 다소 춥다. 연평균 기온은 9.8°C, 연평균 강수량은 약 804.7mm, 연간 일조 시간은 약 1,682.8시간이다.
경제
호텔 및 외식 산업이 지역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IT, 생명과학, 관광, 에너지, 환경 분야의 비즈니스 서비스가 발전해 있다. 주요 기업으로는 출판사 Noordhoff Uitgevers, 담배 회사 Niemeyer, 건강보험사 Menzis, 증류소 Hooghoudt, 천연가스 기업 GasUnie와 GasTerra 등이 있다.
교육
흐로닝언 인구의 약 25%가 학생으로, 네덜란드에서 가장 젊은 인구 구성을 가진 도시이다. 1614년 설립된 흐로닝언 대학교는 약 31,00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이 중 22%가 국제 학생이다. 이 대학은 알레타 야콥스(네덜란드 최초의 여성 대학생), 부보 오켈스(네덜란드 최초의 우주비행사), 빔 다이젠베르흐(초대 유럽중앙은행 총재), 하이커 카메를링 오너스(노벨 물리학상), 벤 페링하(노벨 화학상) 등을 배출하였다.
교통
흐로닝언은 '세계 사이클링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주민의 약 57%가 자전거를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2002년에는 네덜란드 최고의 자전거 도시(Fietsstad 2002)로 선정되었다. 주요 철도역인 흐로닝언 역에서 네덜란드 주요 도시로의 정기 열차가 운행되며, A28 고속도로는 위트레흐트 방면, A7 고속도로는 프리슬란트 및 샨담 방면으로 연결된다.
문화 및 스포츠
흐로닝어 박물관(Groninger Museum)은 1994년 알레산드로 멘디니가 설계한 미래주의적 건축물로 유명하다. 매년 유로소닉 누어더슬라흐(Eurosonic Noorderslag) 음악 쇼케이스가 개최된다. 축구 클럽 FC 흐로닝언이 이곳을 연고지로 하여 에레디비지에에서 활동 중이며, 2014-15 시즌 KNVB 컵에서 우승하였다. 프로 농구팀 도나르(Donar)는 네덜란드 농구 리그에서 7회 우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