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라프나플로키 빌게르다르손(고대 노르드어: Hrafna-Flóki Vilgerðarson, 9세기)은 바이킹 시대의 노르드인 항해사이자 탐험가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아이슬란드로 항해한 최초의 노르드인으로 기록되며, 그의 행적은 아이슬란드의 중세 사료인 『식민의 서(Landnámabók)』에 상세히 전해진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아내는 그로(Gró)였으며 슬하에 오들레이푸르(Oddleifur)와 토요드게르뒤르(Thjódgerdur) 등 자녀가 있었다.
868년경, 흐라프나플로키는 이전에 가르다르 스바바르손(Garðar Svavarsson)이 발견한 북쪽의 땅을 찾아 떠났다. 그는 서노르웨이에서 출항하여 셰틀랜드 제도와 페로 제도를 거쳐 항해했다. 항해 중 세 마리의 까마귀를 풀어 육지를 찾는 데 활용했다고 전해지는데, 첫 번째 까마귀는 페로 제도로 되돌아갔고, 두 번째는 배 위로 돌아왔으며, 세 번째는 북서쪽으로 날아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 까마귀를 길잡이로 삼은 일화 때문에 그는 '까마귀-플로키(Raven-Flóki, Hrafna-Flóki)'라는 별명을 얻었다.
함께 항해한 일행으로는 토롤프(Þórólfr), 헤르욜프(Herjólfr), 팍세(Faxi) 등이 있었다. 팍세가 큰 만을 보고 "이것은 큰 땅이다"라고 말한 데서 유래하여 레이캬비크 앞바다의 만은 팍사플로이(Faxaflói, '팍세의 만')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흐라프나플로키는 바르다스트뢴드(Barðaströnd)의 바트스피외르뒤르(Vatnsfjörður)에 겨울 캠프를 세웠다. 그해 여름은 매우 좋았으나 혹독한 겨울을 맞이하여 대비가 부족했다. 이듬해 봄, 그는 캠프 위의 가장 높은 산(현재의 베스트피르디르 지역 논펠(Nónfell)로 추정)에 올라 유빙으로 가득 찬 이사피외르뒤르(Ísafjörður)를 목격하고, 그 땅 전체를 '이슬란드(Ísland, 얼음의 땅)'라고 명명했다. 이는 오늘날 아이슬란드(Iceland)라는 국명의 기원이 되었다.
노르웨이로 돌아간 후, 흐라프나플로키는 새로 발견한 땅에 대해 가치가 없다고 평가한 반면, 헤르욜프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모두 있다고 말했고, 토롤프는 "그 땅의 모든 짚 위에 버터가 발려져 있다"고 극찬하여 '토롤프 버터(Þórólfur smjör)'라는 별명을 얻었다. 흐라프나플로키는 이후 아이슬란드로 다시 돌아와 그곳에 정착하여 생을 마감했다.
역사 드라마 『바이킹스(Vikings)』(History 채널)에 등장하는 배 건조공 플로키(Floki, 구스타프 스카르스고르드 분)는 흐라프나플로키 빌게르다르손을 느슨하게 모티브로 한 캐릭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