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이 제닝스(Hughie Jennings, 본명: 휴 앰브로스 제닝스, Hugh Ambrose Jennings, 1869년 4월 2일 ~ 1928년 2월 1일)는 미국의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891년부터 1925년까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서 활동하였다. 선수로는 유격수와 1루수로 활약했으며, 감독으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1945년 사후에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생애 초기
펜실베이니아주 피츠턴(Pittston)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제임스와 노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지역 무연탄 탄광에서 파쇄공(breaker boy)으로 일했다. 1890년 펜실베이니아주 리하이턴(Lehighton)의 세미프로 야구팀에서 유격수로 활약하며 주목을 받았고, 1891년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루이빌 커늘스(Louisville Colonels)와 계약하였다. 1893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이적되었다.
선수 경력
볼티모어 오리올스 (1893~1899)
제닝스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7개 시즌 동안 활약하며 스타 선수로 성장했다. 1894년부터 1896년까지 오리올스는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을 3년 연속 우승했으며, 이 시기 팀에는 제닝스를 포함해 6명의 훗날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제닝스는 메이저 리그 유격수 중 최고 수준의 성적을 기록했다. 1895년에는 타율 .386, 204안타, 159득점, 53도루를 기록했고, 1896년에는 타율 .401, 209안타, 121타점, 70도루를 기록했다.
제닝스는 당대 가장 대담한 선수 중 하나로 알려져 있었으며, 투구에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896년에는 투구에 51번 맞았는데, 이는 현재까지 깨지지 않은 메이저 리그 단일 시즌 기록으로 남아 있다. 통산 사구 기록도 287개로, 크레이그 비지오(285개)보다 많은 역대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894년부터 1898년까지 5개 시즌 동안만 202번 투구에 맞았다.
수비에서도 뛰어난 유격수로 평가받았으며, 수비율과 척살 부문에서 각각 3번씩 내셔널 리그를 이끌었다. 1898년 팔 부상을 당하면서 유격수로서의 경력은 사실상 마무리되었고, 이후 1루수로 전향했다.
브루클린 수퍼바스와 필라델피아 필리스 (1899~1903)
1899년 감독 네드 핸런이 브루클린 수퍼바스로 옮기면서 제닝스도 함께 이적했다. 브루클린에서 1899년과 1900년 내셔널 리그 페넌트 우승에 기여했다. 1901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되었으나, 팔 부상의 후유증으로 이전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선수 경력은 점차 마무리되었다.
감독 경력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907~1920)
1907년 제닝스는 타이 코브와 샘 크로퍼드를 보유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1907년부터 1909년까지 3년 연속 아메리칸 리그 페넌트 우승을 이끌었으나, 1907년과 1908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시카고 컵스에게, 1909년에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에게 각각 패배했다.
디트로이트에서의 재임 기간 동안 제닝스는 3루 코치 박스에서 펼치는 화려한 퍼포먼스로 유명했다. "Ee-Yah!"라는 독특한 함성과 함께 양팔을 흔들고 오른쪽 무릎을 들어 올리는 동작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으며, 이로 인해 "휴이 'Ee-Yah' 제닝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1907년에는 상대팀을 조롱하는 호루라기를 사용한 이유로 정직 처분을 받기도 했다.
감독으로서 그는 뛰어난 코칭 능력을 인정받았다. 코니 맥은 존 맥그로, 조 매카시와 함께 제닝스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3인 중 하나로 평가했다. 타이 코브의 다루기 힘든 성격과 재능을 이해하고 그에게 자유를 주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0년 시즌 이후 타이거스 감독에서 물러났다. 그의 타이거스 감독 통산 승수 1,131승은 1992년 스파키 앤더슨이 경신하기 전까지 구단 역사상 최다 기록이었다.
뉴욕 자이언츠 (1921~1925)
1921년 제닝스는 절친이었던 존 맥그로가 감독으로 있는 뉴욕 자이언츠의 코치로 합류했다. 코치로서 1921년과 1922년 월드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맥그로가 병환으로 자리를 비울 때 1924년과 1925년 일부 기간 동안 자이언츠의 감독 대행을 맡았다. 그의 통산 감독 기록은 1,184승 995패였다.
법학 경력
1899년 시즌 이후 제닝스는 코넬 대학교 법학대학원에 진학하여 법학을 공부하면서 코넬 야구팀 감독을 겸하기도 했다. 코넬에서 법학 학위를 마치지는 못했으나, 1905년 메릴랜드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여 법률 개업을 시작했다. 이후 야구 경력 동안 오프시즌에는 법조 활동을 계속했다.
말년과 사망
제닝스는 생애 동안 여러 차례의 심각한 사고를 겪었다. 투구에 머리를 맞아 3일간 의식을 잃은 적이 있었고, 코넬 대학 시절에는 비워진 수영장에 거꾸로 뛰어들어 두개골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1911년에는 자동차 사고로 두개골 골절, 뇌진탕, 양다리와 왼쪽 팔 골절 등 중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1925년 시즌 이후 신경 쇠약 증세를 겪으면서 메이저 리그에서 은퇴했다. 1928년 2월 1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의 자택에서 척수막염으로 사망했다. 사인은 척수막염이었으며 결핵이 동반 원인으로 기재되어 있다.
1945년 선수로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사후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