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글래스의 초기 생애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으나, 윌리엄 헨리 애슐리(William Henry Ashley)의 100인 조수(Ashley's Hundred) 중 한 명으로 활동하며 록키 산맥을 탐험하고 모피를 사냥했다. 그는 뛰어난 사냥꾼이자 생존 전문가로 명성이 높았다.
회색곰 습격과 생존 1823년 여름, 글래스는 현재의 사우스다코타주 그랜드 강(Grand River) 인근에서 정찰 중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 회색곰의 공격을 받았다. 그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으나, 다른 대원들의 도움으로 곰을 죽였다. 그러나 그의 부상은 너무 심각하여 생존 가능성이 희박해 보였고, 동료들은 그의 발목을 잡아 팀의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결국 원정대의 대장인 앤드류 헨리(Andrew Henry)는 존 피츠제럴드(John Fitzgerald)와 어린 짐 브리저(Jim Bridger)에게 글래스가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키고 그를 매장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이들은 글래스의 총과 나이프 등 장비를 빼앗고 그를 죽은 것으로 간주하여 방치한 채 떠났다. 하지만 글래스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았고, 부러진 다리와 찢어진 등으로 움직일 수 없는 몸을 이끌고 약 200마일(320km) 이상 떨어진 미주리강의 요새 키오와(Fort Kiowa)까지 기어서, 혹은 간신히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썩은 나무로 구더기를 유인하여 죽은 살을 파먹게 했고, 뱀이나 들짐승의 잔해, 야생 열매 등을 먹으며 연명했다. 몇 주에 걸친 고난 끝에 그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도움을 받거나 혼자서 이동하여 결국 요새 키오와에 도착했다.
이후 삶과 죽음 글래스는 회복 후 자신을 버리고 간 피츠제럴드와 브리저를 찾아 복수하려 했으나, 여러 번의 시도 끝에 두 사람을 만났을 때 최종적으로 복수를 포기하거나 용서했다. 브리저는 젊은 나이였고, 피츠제럴드는 이미 미군에 입대하여 글래스가 사적인 복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후에도 모피 사냥꾼과 국경 개척자로 계속 활동했으며, 1833년경 플랫 강(Platte River) 근처에서 아리카라(Arikara) 원주민들의 습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중문화 속 휴 글래스 휴 글래스의 이야기는 그의 생존 본능과 복수심, 그리고 서부 개척 시대의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로 자리 잡았다. 그의 이야기는 여러 소설과 영화의 영감이 되었다. 특히 2002년 소설 『더 레버넌트: 사냥꾼의 전설(The Revenant: A Novel of Revenge)』이 출판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2015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영화 《레버넌트》(The Revenant)가 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글래스의 극한 생존기와 복수 여정을 극적으로 그려내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