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PIVERSE

휘그당 (영국)

휘그당(Whig Party)은 1678년부터 1859년까지 존재한 영국의 정당이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그레이트브리튼, 그리고 이후 연합왕국의 의회에서 활동하였으며, 라이벌 관계였던 토리당(Tory)과 함께 17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영국 정치의 양대 세력을 이루었다. 휘그당은 이후 자유당(Liberal Party)으로 발전하였다.

기원과 명칭

휘그당의 기원은 찰스 2세 치세인 1678년부터 1681년 사이의 왕위 계승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톨릭 신자였던 왕의 동생 요크 공작 제임스(훗날 제임스 2세)의 즉위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 인물들을 상대 측이 "Whiggamore"라고 부른 것이 명칭의 시작이다. '휘그(Whig)'라는 단어는 스코틀랜드 방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며, "말을 타고 돌아다닌다" 또는 "모반자", "말 도둑"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편 즉위를 인정하는 측은 상대편을 아일랜드어로 "불량", "도적"을 뜻하는 "토리(Tory)"라고 불렀다. 초기의 휘그와 토리는 정당(formal party)이라기보다 왕위 계승 문제를 중심으로 결집한 정치적 파벌(faction)에 가까웠다.

명예혁명과 입헌군주제

1685년 제임스 2세가 즉위했으나 가톨릭 보호 정책과 절대왕정적 태도로 논란을 일으켰다. 1688년 제임스의 왕비가 왕자 제임스를 출산하면서 가톨릭 왕조의 영속화 가능성이 커지자, 휘그와 토리는 일시적으로 결집하여 제임스를 축출하고 그의 딸 메리와 그 남편인 오렌지 공작 윌리엄을 각각 메리 2세와 윌리엄 3세로 즉위시켰다. 이것이 이른바 명예혁명(1688년)이다. 이 사건을 통해 영국에서 입헌군주제가 확립되는 과정에 휘그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의원내각제와 집권

1714년 앤 여왕의 사망으로 스튜어트 왕조가 단절되고 하노버 왕가의 조지 1세가 즉위하였다. 독일 출신의 새 국왕이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고 국정에 소극적이었던 점은 의회의 권한 강화로 이어졌다. 1715년 휘그 지도자 로버트 월폴(Robert Walpole)이 재무부 장관 겸 사실상의 총리로서 약 21년간 내각을 이끌었으며, 그는 영국의 초대 총리로 간주된다. 월폴 시기에 내각이 국왕이 아닌 의회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의원내각제가 발전하였다. 휘그당은 이후 1762년까지 대체로 정권의 중심에 있었다.

이념과 정책

휘그당은 의회민주주의, 헌정주의, 자유주의적 가치를 중시하였다. 자본주의 발달 촉진, 부르주아 우대, 자유무역 확대 등의 정책을 추구하면서 무역과 상업의 장벽을 철폐하려 하였다. 대표적인 정책으로 곡물법(Corn Laws)의 철폐가 있다. 영국 정치사에서 "휘그"라는 용어는 자유주의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으며, 역사해석에서 "휘그 사관(Whig historiography)"이라는 개념이 등장할 만큼 문화적·학문적 영향력을 남겼다.

자유당으로의 전환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1830년대부터 1860년대에 걸쳐 도시 노동자가 증가하고 차티스트 운동 등 선거권 확대를 요구하는 운동이 전개되었다. 1832년 제1차 선거법 개정을 비롯한 개혁 법안을 주도한 휘그당은 1850년대에 이르러 피얼라이트(Peelites)와 급진파 등을 흡수하며 파머스턴 자작 시기에 '자유당'(Liberal Party)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휘그당은 1859년 6월 6일 해산된 것으로 기록되며, 자유당이 그 후신으로 간주된다.

역대 주요 인물

휘그당의 주요 지도자로는 로버트 월폴, 윌리엄 피트(초대 채텀 백작), 찰스 제임스 폭스, 찰스 그레이(제2대 그레이 백작), 윌리엄 램(제2대 멜버른 자작), 존 러셀, 헨리 존 템플(제3대 파머스턴 자작) 등이 있다. 이들은 18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영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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