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기(後漢期)는 한나라가 서한(西漢)에서 분열된 뒤, 동양(동한)으로 불리던 제2차 한나라 시기를 지칭한다. 서한이 기원전 202년에 한 고조가 폐위된 후, 왕후 유화가 권력을 장악하고 군웅이 대립하던 시기를 거쳐, 서기 25년 신한(신한제) 라는 명칭으로 재건된 동한(동한, Eastern Han) 왕조를 의미한다.
주요 연대와 특징
- 시기: 서기 25 년 – 220 년 (약 195년)
- 통치자: 초대 황제 고조 유방(전 한의 창시자)와는 별개로, 후한은 고조 유방의 손자인 고조 유방(고조왕)이 아닌, 고조 유방의 손자 고조 유방(고조왕)이 아닌 전한 말기의 혼란을 극복하고 즉위한 유방이 통치한 동한을 계승한다.
- 정치 체제: 황제 중심의 중앙집권 체제 유지하였으나, 후반부에는 외척가(外戚)와 관료·지방 호족 간의 권력 다툼이 심화되어 실제 통치력이 약화되었다.
- 사회·문화: 유교가 국가 통치 이념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으며, 《후한서》(후한 기사가)를 비롯한 사료가 편찬되었다. 학문·예술·과학 기술이 발전했으며, 특히 천문·역법·의학 분야에서 중요한 성과가 나타났다.
- 외교·전쟁: 북쪽의 유목민(흉노·후한 등)과의 교전, 서쪽의 촉·오·위 등의 삼국 시대로 이어지는 군사적·정치적 갈등이 지속되었다. 특히 184년의 황건적 난은 중앙 정부의 통제력을 크게 약화시켰다.
- 멸망: 220년 후한 마지막 황제 헌제(헌제) 가 퇴위하면서 삼국 시대가 시작되고, 위나라가 후한을 대체하였다.
어원 및 사용 맥락
- “후한(後漢)”은 한(漢)이라는 왕조 명칭에 “후(後)”를 붙여 ‘후속·다음’이라는 의미를 더한 것으로, 중국어 “後漢”을 한국어식으로 읽은 형태이다.
- “기(期)”는 특정한 연대나 시대를 나타내는 명사형 어미이다. 따라서 “후한기”는 문자 그대로 ‘후한 시대’를 의미한다.
- 현대 한국어 역사 서적·강의·백과사전 등에서 ‘동한(東漢)’과 동의어로 쓰이며, ‘후한 말기’, ‘후한 후기’ 등으로 세부 시기를 구분할 때도 사용된다.
학술적 위치
후한기는 동아시아 고대·중세 사학에서 중요한 연구 대상이며, 사회·정치·문화 변천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시기로 평가된다. 고대 중국 역사의 전형적인 중앙집권 국가 모델이 유지되는 동시에, 지방 호족·외척가·관료들 사이의 권력 투쟁으로 인해 왕조가 쇠퇴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관련 문헌
- 《후한서》(后汉书): 후한 시대의 공식 사료 중 하나.
- 《삼국지》(三国志): 후한 말기와 삼국 시대 초기에 대한 기록을 포함.
- 현대 한국어 역사 교과서·전공 서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