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안 바우티스타 알베르디(Juan Bautista Alberdi, 1810년 8월 29일 ~ 1884년 6월 19일)는 아르헨티나의 정치 사상가, 외교관, 법학자, 작가이다. 아르헨티나 헌법 제정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19세기 아르헨티나 자유주의 사상의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주요 생애 및 활동 1810년 투쿠만 주 산미겔데투쿠만에서 태어났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모레노 국립학교(Colegio Nacional de Buenos Aires)에서 수학했으며, 이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후안 마누엘 데 로사스 독재 정권에 반대하여 우루과이, 칠레, 유럽 등지에서 망명 생활을 하며 저술 활동과 외교 활동을 병행했다.
주요 저서 및 사상 대표 저서로는 『아르헨티나 헌법의 기초와 기점』(Bases y puntos de partida para la organización política de la República Argentina, 1852)이 있다. 이 저서에서 그는 미국의 연방제 헌법과 유럽의 자유주의 사상을 참조하여, 아르헨티나의 지리적·역사적 현실에 맞는 공화제 헌법 체제를 제안했다. "통치한다는 것은 인구를 늘리는 것이다"(Gobernar es poblar)라는 명제를 내세워 이민 장려와 경제 발전을 국가 발전의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헌법 제정 기여 1853년 산타페에서 제정된 아르헨티나 헌법은 알베르디의 『헌법의 기초와 기점』에 담긴 이론적 틀을 상당 부분 반영하여 성안되었다. 그는 헌법 제정 당시 직접 제헌 의회 의원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후스토 호세 데 우르키사 장군 등 당시 지도자들에게 헌법 초안과 자문 서한을 보내는 등 막후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외교관 및 말년 아르헨티나 연맹 정부 수립 후 칠레, 페루, 유럽 주재 공사 및 대사로 활동하며 국제무대에서 아르헨티나의 승인과 국익 수호를 위해 노력했다. 말년에는 파리에서 지내며 회고록 집필과 국제법 연구를 계속하다 1884년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했다. 유해는 1889년 아르헨티나로 이송되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콜레타 묘지에 안장되었다.
평가 알베르디는 아르헨티나 근대 국가 형성의 지적 설계자로 불린다. 그의 사상은 1853년 헌법 체제 수립뿐만 아니라, 이후 아르헨티나의 이민 정책, 교육 제도, 철도 건설 등 근대화 정책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