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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경의 난

개요

후경의 난(侯景之乱)은 548년부터 552년까지 중국 남북조 시대에 남조의 양(梁)나라에서 일어난 무장 반란 사건이다. 동위(東魏)의 장수였던 후경(侯景)이 양나라에 귀순한 뒤, 양나라와 동위의 외교 협상 과정에서 동위로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계기로 반란을 일으켰다.

배경

후경은 갈족(羯族) 출신의 무장으로, 동위의 실권자 고환(高歡)의 휘하에서 하남(河南) 13주의 태수로서 상당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547년 고환이 사망하고 아들 고징(高澄)이 실권을 계승하자, 후경은 자신이 군사력 때문에 의심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하여 동위를 배신하고 하남 일대의 영지를 갖고 양나라에 귀순하였다.

양나라 무제(武帝, 재위 502~549)는 후경의 귀순을 받아들이고 영지를 접수하기 위해 대군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동위는 모용소종(慕容紹宗)을 보내 후경을 공격하고, 동위에 남아 있던 후경의 처자식을 처형하였다. 동위군은 양나라군까지 격파하고 하남을 되찾았다. 이후 동위는 양나라와 수호 관계를 맺고 후경을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적 압박을 가하였다.

전개

548년, 양나라와 동위의 협상 과정에서 후경이 동위로 반환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후경은 자신의 근거지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정예병 약 800여 명에 불과했으나, 강제 모병, 노예 해방, 그리고 양나라 귀족제의 모순 속에서 생계를 위협받던 농민들을 규합하여 곧 대군으로 성장하였다.

후경은 양나라의 수도인 건강(建康, 지금의 난징)으로 진격하여 이를 포위하였다. 양나라 무제와 태자는 각지에 분봉된 종실 왕들에게 근왕병을 요청하였으나, 왕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적극적으로 구원에 나서지 않았다. 그 결과 이듬해인 549년 건강이 함락되었고, 무제는 포로가 되어 쇠약해진 상태로 사망하였다.

결과

건강을 장악한 후경은 간문제(簡文帝)를 옹립하였다가 551년에 간문제를 살해하고 예장왕 소동(蕭棟)을 제위에 올린 뒤, 선양을 받아 스스로 황제에 즉위하여 후한(侯漢)을 자칭하였다. 그러나 각지에 주둔한 양나라 종실 세력 중 가장 강했던 형주자사 소역(蕭繹)이 왕승변(王僧辯)에게 대군을 주어 건강을 공격하게 하였다. 552년 후경은 패배하여 도망치는 과정에서 부하에게 살해당함으로써 반란은 종결되었다.

의의

후경의 난은 양나라의 수도인 건강이 함락되고 무제가 사망하는 등 남조 사회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하였다. 이 사건으로 양나라의 국력은 크게 약화되었으며, 이후 양나라 황족들 간의 권력 투쟁과 각지의 군벌화가 심화되었다. 반란 진압에 공을 세운 진패선(陳霸先)은 이후 진(陳)나라를 건국하게 되어, 후경의 난은 남조 체제 재편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또한 소역이 서위(西魏)에 원군을 요청한 과정에서 후량(後梁)이 성립하는 등 주변 세력 관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참고 자료

  • 《남사(南史)》, 《양서(梁書)》 등 중국 정사 기록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삼국사기』 관련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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