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화황후 음씨(孝和皇后 陰氏)는 중국 후한(後漢) 제4대 황제인 화제(和帝)의 첫 번째 황후이다. 성은 음(陰), 이름은 사서에 전하지 않는다. 출생년도는 미상이며, 103년에 사망하였다. 출신지는 후한의 하남군 신야현(현재의 허난성 난양시 신예현)이다.
음씨는 후한 광무제의 황후였던 광열황후 음려화(光烈皇后 陰麗華)의 오빠인 음식(陰識)의 증손녀로, 음씨 가문은 후한 초기부터 황실과 인척 관계를 맺은 명문가였다. 아버지는 음강(陰綱)이다.
음씨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서예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영원(永元) 4년(92년)에 간택되어 궁중에 들어갔는데, 광열황후의 가까운 일족이었던 관계로 곧바로 귀인(貴人)이 되었다. 이후 화제의 총애를 받아 영원 8년(96년)에 황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화희황후 등씨(和熹皇后 鄧氏)가 입궁한 이후 화제의 총애가 점차 등씨에게로 옮겨가자, 음씨는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음황후의 외할머니인 등주(鄧朱)가 궁궐을 출입하였는데, 음황후와 등주가 함께 저주(呪詛)를 행한다는 고변이 제기되었다. 조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자 화제는 크게 노하여 사도 노공(魯恭)을 시켜 황후를 폐위하는 조서를 내렸다. 음씨는 황후의 인수를 거두어지고 동궁(桐宮)으로 옮겨졌으며, 근심 속에 병이 들어 103년에 사망하였다. 폐위된 황후였으므로 별도의 시호는 없다.
이 저주 사건으로 인해 음씨의 아버지 음강은 자살하였고, 외할머니 등주와 그 두 아들 음봉(陰奉)·음의(陰毅), 음황후의 동생들인 음질(陰軼)·음보(陰輔)·음창(陰敞) 등이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음질·음창과 등주의 가족은 일남군(日南郡, 현재의 베트남 중부) 비경현(比景縣)으로 유배되었으며, 음씨 종친 대다수는 관직에서 면직되어 고향으로 돌려보내졌다.
이후 영초(永初) 4년(110년), 황태후가 된 화희황후 등씨에 의해 사면령이 내려져 음씨 일가의 생존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적몰되었던 재산도 일부 돌려받게 되었다. 능묘는 임평정(臨平亭)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