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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성인황후

효성인황후(孝誠仁皇后, 1653년~1674년)는 청나라 제4대 황제인 강희제(康熙帝)의 첫 번째 황후이자 정실 부인이다. 만주 정황기(正黃旗) 허서리 할라(赫舍里氏) 출신으로, 강희제의 보정대신(輔政大臣)이었던 색니(索尼)의 손녀이며 아버지는 갈포라(葛布喇)이다.

1653년(순치 10년) 11월 26일에 태어났으며, 1665년(강희 4년)에 강희제와 혼인하여 황후로 책봉되었다. 황후 재위 기간은 1665년부터 1674년까지 약 9년에 해당한다. 황후로서 내명부와 후궁을 관장하는 직책을 맡았으며, 역사 기록에 따르면 성격이 유순하고 현명하여 바깥일에 힘쓰는 남편 강희제를 성실히 보좌하였다. 이로 인해 강희제와 시조모인 효장태황태후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녀의 자녀에 대해서는 두 명의 아들이 기록되어 있다. 1669년(강희 8년)에 첫 아들 승호(承祜)를 낳았으나 1672년(강희 11년)에 4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1674년(강희 13년)에 둘째 아들 윤잉(胤礽)을 낳은 직후 산후병으로 사망하였으며, 당시 향년 20세였다. 이후 강희제는 그녀가 남긴 아들 윤잉을 황태자로 책봉하였다.

그녀의 가문은 여러 인물이 영시위내대신(領侍衛內大臣)을 지내며 오랫동안 권세를 누렸다. 특히 그녀의 숙부인 색액도(索額圖)는 윤잉의 뒤를 이용하여 세력을 확장하려 하였다는 이유로 1703년(강희 42년)에 사사(賜死)당하였다. 한편 아들 윤잉은 황태자로서 총명하였으나 외종조부 색액도의 영향과 형제들의 견제 등으로 인해 점차 탈선하여 결국 황태자에서 폐위되었다.

사후 시호는 인효황후(仁孝皇后)로 추증되었으나, 이후 옹정제(雍正帝) 즉위 후에 효성공숙정혜안화여천양성인황후(孝誠恭肅正惠安和儷天襄聖仁皇后)로 재추존되었다. 이후 후대에 시호가 추가 보충되어 최종적으로는 효성공숙정혜안화숙의각민여천양성인황후(孝誠恭肅正惠安和淑懿恪敏儷天襄聖仁皇后)가 되었다. 효성인황후의 시호는 강희제의 시호 마지막 글자인 '인(仁)'이 함께 포함된 형태로 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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