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는 자식이 부모를 정성껏 섬기고 공경하는 도리 또는 그 행위를 가리키는 동양의 윤리 개념이다. 영문으로는 filial piety에 해당한다. 한자 '孝'는 '늙을 로(耂)'와 '아들 자(子)'가 결합한 회의자로, 아들이 노인을 받들어 업고 있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의와 의의
효는 부모에 대한 경애(敬愛)의 감정에 토대를 두고 행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일반 용어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에 대한 공경과 부양은 여러 문화권에서 강조되는 덕목이지만,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의 효는 특히 유교 사상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교에서는 부모에 대한 효를 모든 도덕 규범의 기초이자 근본으로 삼았다. 『효경』에서는 효를 "하늘의 불변한 기준이요 땅의 떳떳함"이라고 표현하여 효를 우주적 원리로까지 승화시킨 바 있다.
공자의 효 관념
유교 사상의 핵심적 도덕 규범인 효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공자의 효에 대한 관념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공자는 효의 본유 관념으로 공경심을 강조하였다. 단순히 부모를 봉양하는 일뿐만 아니라 공경하는 마음(敬)이 관건이라고 보았다. 둘째,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셋째, 효는 공자로부터 이미 사후(死後)까지 확대된 개념으로 나타나며, 부모가 살아 계실 때 예로써 섬기고, 장례를 예로써 치르고, 제사를 예로써 모시는 것까지 포함되었다.
맹자와 후대의 전개
맹자는 공자의 효 사상을 유교의 중심 사상으로 굳건히 다져 놓았다. 그는 효를 백행(百行)의 근본으로 보았고,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효의 중요한 요소로 부각시켰다. 이후 한대(漢代)를 거치면서 삼강(三綱) 사상의 성립과 함께 충·효·열이 권위에 바탕한 종속 윤리로 정착되었다.
효는 유교의 또 다른 핵심 윤리인 충(忠)과 상호 충돌할 가능성이 있으나, 전통적으로는 "충신은 효자의 문에서 나온다"는 말에서 볼 수 있듯 효를 근본으로 하여 충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정리되어 왔다.
한국에서의 효 사상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태학이 설치되어 오경과 중국 사서를 교육한 기록을 시작으로, 신라의 국학에서 『논어』와 『효경』이 필수 과목으로 교육되었다. 신라의 화랑도에서는 세속오계를 지도 이념으로 삼았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효의 표본으로 기록된 인물들이 전한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문화가 가미된 새로운 효 관념이 나타났으며, 『명심보감』이 편찬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의 형성과 전개 과정 속에서 효 관념이 정치적·사회적 규범으로 체계화되었다. 세종 13년(1431)의 『삼강행실도』, 중종 때의 『이륜행실도』, 정조 때의 『오륜행실도』 등이 차례로 간행되어 충·효·열의 행적이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효가 오륜(五倫)의 제일의(第一義)로 여겨지기도 하였으나, 본격적인 중앙집권국가로 전환되면서 근본 이념에서 충보다 한 단계 아래로 취급되기도 하였다.
비판적 관점
묵자는 효가 혈연 관계만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결국 세상의 혼란을 초래했다고 비판하였고, 노자는 효가 인위적인 인의(仁義)를 강조하여 자연스러운 상태가 무너진 데서 나타난 가치라고 지적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부모-자식 관계를 군주적 관계로 규정한 바 있다. 서양의 기독교 전통에서도 십계명의 제5계명("네 부모를 공경하라")을 통해 부모 공경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나, 유교적 효가 봉양과 예절에 중점을 두는 것과 달리 성경에서는 순종과 경청에 중점을 두며 신의 명령이자 도덕적 의무로 보고 있다는 차이가 지적된다.
현대적 의미
현대 사회에서는 전통적인 효 관념이 변화를 겪고 있다. 가족 관계의 평등화, 부모와 자식 간의 쌍방적 권리와 의무 인식이 확산되면서, 무조건적 복종과 봉양을 전제로 한 전통적 효 관념에 대한 재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통 사회에서 효 윤리는 가족을 결속시키고 사회 풍속을 순화하는 데 기여한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 효도 예절이 형식적으로 고정화·관습화되어 개인의 진취적 기상을 억압하고 사회적 합리적 개혁을 둔화시킨 부정적 측면도 함께 지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