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창(會昌)은 중국 당나라(唐) 제15대 황제인 무종(武宗) 이염(李炎)이 사용한 연호이다. 841년 1월부터 847년 1월까지 약 6년 동안 사용되었다.
개원
무종은 개성(開成) 6년(841년) 1월 9일(양력 2월 4일)에 연호를 회창으로 개원하였다. 무종이 붕어한 후 선종(宣宗)이 즉위하였으며, 회창 7년(847년) 1월 17일(양력 2월 6일)에 연호를 대중(大中)으로 개원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주요 사건
회창 연간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은 회창 5년(845년)에 이루어진 불교 탄압, 이른바 '회창폐불(會昌廢佛)' 또는 '회창의 법난'이다. 도교를 신봉했던 무종은 당시 비대해진 불교 교단을 억압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사찰 4,600여 곳과 초제·난야(초막 형태의 작은 사찰) 40,000여 곳을 폐지하고, 승려와 비구니 약 260,500명을 환속시켰다. 또한 사원 소유의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였으며, 불교 외에도 마니교·조로아스터교·경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등 외래 종교도 함께 탄압하였다. 이는 중국 역사상 '삼무일종의 법난(三武一宗의 法難)' 가운데 세 번째이자 최대 규모의 불교 탄압으로 기록된다.
동시대 연호
같은 시기 한반도에서는 신라가 함화(咸和, 831년~857년) 연호를 사용하였고, 일본에서는 조와(承和, 834년~848년) 연호가 사용되었다.
의의
회창 연호는 당나라 중기 무종의 통치 시기를 대표하며, 특히 불교 탄압 정책으로 인해 동아시아 불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시기 불교 탄압을 피해 신라 출신의 승려 무염(無染)과 범일(梵日) 등이 당나라에서 신라로 귀국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