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덕 황씨(懷德 黃氏)는 옛 회덕군(현 대전광역시)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황윤보(黃允寶)는 고려 때 지문성부사(知文成府事)와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내고 좌명공신(佐命功臣)으로 회천군(懷川君)에 봉해졌다. 2015년 인구는 8,385명으로 집계되었다.
관향
회덕(懷德)은 대전광역시 중구, 동구, 대덕구 일대에 있던 옛 지명이다. 백제 때는 우술군(雨述郡) 또는 후천(朽淺)이라 불렀으며,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비풍군(比豊郡)으로 개칭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회덕현으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에 공주에 편입되었다가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설치하면서 독립하였다. 1413년(태종 13) 군현제 개편으로 회덕현으로 정해져 조선시대까지 유지되었다. 1895년 회덕군이 되었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대전군으로 개편되었으며, 이후 행정구역 개편을 거쳐 현재의 대전광역시 일대에 해당한다.
시조 및 계통
시조 황윤보(黃允寶)는 고려 때 지문성부사와 형부상서를 역임하고 좌명공신으로 회천군에 봉해졌다. 그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에 있다. 한편 일부 자료에 따르면 한(漢)나라 유신(儒臣)인 황락(黃洛)을 상계(上系)의 대시조로 전하고, 황윤보를 본계(本系)의 1세조로 두는 방식이 병존한다. 황락은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 교지국(월남 지역)에 사신으로 가던 중 폭풍을 만나 평해(平海)에 표착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해지며, 이로 인해 회덕 황씨는 평해 황씨 계열에서 분적된 본관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 인물
4세손 황자후(黃子厚, 1363~1440)는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이르렀다. 황자후의 아들 황유(黃裕)는 조선 태종의 서녀 숙안옹주(淑安翁主)의 부마가 되어 회천위(懷川尉)에 올랐다.
황유의 현손 황삼성(黃三省)은 1552년(명종 6)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헌납, 홍문관교리 등 청직을 역임하고 1563년 사헌부장령으로 승진하였다. 황삼성의 손자 황덕부(黃德簿)는 홍문관 전한에 이르렀다.
황종해(黃宗海)는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광해군 때 폐모론이 일어나자 과거를 단념한 후 김장생(金長生)을 찾아가 예학을 강의받았다.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학문 연구에 전념하였으며, 저서로 《후천집(朽淺集)》을 남겼다.
황세정(黃世楨)은 송준길의 수제자로 동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과거 급제자
회덕 황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5명, 무과 급제자 4명을 배출하였다. 문과 급제자로는 황덕부(黃德符), 황삼성(黃三省), 황찬(黃燦), 황하흠(黃夏欽), 황해(黃諧)가 있다. 무과 급제자로는 황신생(黃申生), 황원립(黃元立), 황응남(黃應男), 황의룡(黃義龍)이 있다.
집성촌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 충청북도 보은군 회남면, 충청북도 청주시 문의면,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충청남도 천안시 풍세면 등에 집성촌이 분포한다.
문화재
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에 위치한 미륵원지(彌勒院址)는 고려시대 시조 황윤보에 의해 건립된 생활유적으로,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