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조가(黃鳥歌)는 기원전 17년경 고구려 제2대 왕인 유리명왕(瑠璃明王)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고대 가요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유리명왕 3년(기원전 17년) 조에 4언 4구의 한시(漢詩) 형태로 번역되어 수록되어 전한다.
창작 배경: 《삼국사기》에 따르면, 유리명왕에게는 화희(禾姬, 골천인 출신)와 치희(雉姬, 한나라 사람 출신) 두 후비가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투었고, 왕이 사냥을 간 사이 화희가 치희를 "한가의 비첩"이라고 모욕하자 치희는 분노하여 친가로 돌아갔다. 왕이 뒤쫓아갔으나 치희가 돌아오지 않자, 나무 아래에서 쉬다가 꾀꼬리(黃鳥) 암수 한 쌍이 정답게 노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외로움을 노래로 읊었다고 한다.
노랫말(한역):
翩翩黃鳥 (편편황조) — 펄펄 나는 저 꾀꼬리는
雌雄相依 (자웅상의) — 암수가 서로 의지하는데
念我之獨 (념아지독) — 생각하니 나는 외로워
誰其與歸 (수기여귀) — 누구와 함께 돌아갈꼬
문학사적 의의: 황조가는 창작 연대와 작자가 비교적 명확히 알려진 한국 최초의 서정시(서정요)로 평가된다. 집단적·주술적 성격의 고대 문학에서 개인의 감정과 서정을 표현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이다. 꾀꼬리 암수의 조화로운 모습과 대비시켜 화자의 외로움과 상실감을 드러내는 우의적(寓意的) 표현 기법이 특징이다.
작자에 관한 다양한 견해: 양주동, 이가원 등 다수의 학자는 유리명왕이 직접 지은 것으로 보는 반면, 정병욱은 작자 미상의 고대 가요가 후대에 유리왕 설화에 삽입된 것으로 보았다. 임동권은 민요에서 비롯된 것으로, 김승찬은 부족장이 지은 것을 후대에 채록한 것으로 보았으며, 고정옥은 후인이 위작한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또한 이명선과 이가원은 이 노래를 치희와 화희가 상징하는 종족 간의 대립을 반영한 서사시로 해석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