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시인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노직(魯直), 호는 산곡(山谷) 또는 부옹(涪翁)이다. 강서성(江西省) 출신으로, 23세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다.
황정견은 북송의 대표적 문인인 소식(蘇軾)의 문하에서 수학한 인물로, 소식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되어 북송 시단의 대표적 존재로 꼽힌다. 그의 시는 소식의 작품보다 더욱 내향적이고 이지적인 경향을 보였으며, 두보(杜甫)와 도연명(陶淵明)의 시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 기이하고 파격적인 시풍으로 송시(宋詩)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으며, 그가 강서 출신이었던 데에서 유래하여 그를 따르는 시인들의 유파를 '강서시파(江西詩派)'라고 부른다. 12세기 전반에는 이 일파의 시풍이 중국 시단을 풍미하였다.
서예가로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의 글씨는 특히 해서(楷書)에서 독자적인 '황정견체'를 이룰 정도로 독특한 필치를 보여주었으며, 채양(蔡襄), 소식, 미불(米芾)과 함께 북송 사대가(北宋四大家)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진다. 현재 전해지는 그의 대표적 서예 작품으로는 《화기훈인첩(花氣薰人帖)》 등이 있다.
관리로서의 생애는 비교적 순탄하지 않았다. 국사원(國史院)의 편수관을 지낸 것 외에는 여러 차례 좌천과 유배를 겪었으며, 만년에는 광서(廣西)의 의주(宜州)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문집으로는 《예장황선생문집(豫章黃先生文集)》이 남아 있다. 또한 불교, 특히 선(禪)에 깊이 관심을 가졌으며 선시(禪詩)를 여러 편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황정견은 북송 문예 전성기의 대표적 인물로서, 시와 서예 두 분야 모두에서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