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득 (黃世得, 1537년 ~ 1597년)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李舜臣) 장군 휘하에서 활약한 수군 장수로서, 뛰어난 지략과 용맹으로 여러 해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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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생애 및 관직: 본관은 창원 황씨(昌原 黃氏)이며, 전라남도 강진 출신이다. 1567년(명종 22년)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 훈련원 주부(訓練院主簿) 등을 거쳤다. 이후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 소속의 여러 만호(萬戶)직을 역임하며 수군 지휘관으로서의 경험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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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 활약:
-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휘하로 참전하였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 그의 작전 구상에 깊이 관여하였다.
- 당포 해전, 사천 해전, 한산도 대첩 등 초기 주요 해전에서 돌격장(突擊將)으로서 선봉에 서서 왜군과 맞서 싸우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특히 한산도 대첩에서는 거북선과 함께 왜선을 격파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이순신 장군이 파직당하고 백의종군(白衣從軍)할 때도 그를 지지하며 함께 종군하였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명량해전(鳴梁海戰)에서는 판옥선 3척을 이끌고 적진 깊숙이 돌격하여 왜군 함대를 격파하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그의 용맹은 왜군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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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당시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에서 조선 수군이 궤멸될 때, 원균(元均)의 지휘 아래 왜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의 죽음은 조선 수군에게 큰 손실이었다.
사후 평가 및 기념
황세득의 용맹함과 충성심은 《조선왕조실록》과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 등 여러 역사 기록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는 정유재란 이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추서되었으며, 전라남도 강진의 송정사(松汀祠) 등에 배향되어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다. 그는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