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세득(黃世得, 1537~1598)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사구(士求)이며, 충청도 직산(稷山) 출신이다. 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황종식(黃鍾植)이고, 어머니는 진양강씨(晋陽姜氏)이다. 부인은 상주방씨(尙州方氏)로, 이순신(李舜臣)의 부인 방씨의 사촌 언니이다. 이에 따라 황세득은 이순신과 사촌 동서지간이 된다.
선조 때 무과(武科)에 급제하였으며, 선전관(宣傳官) 등 여러 관직을 거쳐 광량첨사(廣粱僉使)·장흥부사(長興府使)를 역임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사량첨사(蛇梁僉使)로서 통제사 이순신을 따라 왜적을 방어하였다. 벽파정(碧波亭)과 고금도(古今島) 싸움에서 수공(首功)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이 원균의 모함으로 파직되고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에 임명되자 이에 반발하여 사직하였다. 이후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대패하고 이순신이 복직되자, 황세득은 전라좌수영의 사도진수군첨절제사(蛇渡鎭水軍僉節制使)로 임명되어 명량 해전에 참전하였다.
1598년(선조 31) 10월, 순천 왜교성(曳橋) 전투에 참전하였다.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진린(陳璘)의 명나라 수군은 명나라 육군과의 수륙합동작전을 위해 왜교성 앞바다로 진격하였으나, 명나라 육군 제독 유정(劉綎)이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에게 매수되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수군이 퇴각하게 되었다. 퇴각 과정에서 황세득은 적에게 포위된 명나라 제독 진린을 구출하고 후퇴하던 중 조총에 맞아 전사하였다. 이순신은 그의 죽음을 두고 "세득은 왕사(王事)에 죽었으니, 슬픔이 아니라 영광인 것"이라고 말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사후 1704년(숙종 30)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추증되었으며, 충장(忠裝)의 시호를 받았다. 1605년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충청남도 천안시 직산읍 마정리에는 황세득과 그의 아들 황박(黃珀)의 정려(旌閭)가 세워져 있으며, 황세득의 묘는 처음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에 있었으나 1987년 천안시 직산읍 마정리 용와산으로 이장되었다.
한편, 임진왜란 당시의 애국충정을 노래한 「한산도가(閑山島歌)」를 황세득이 지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어 학계에서 확정된 결론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