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상 (黃裳)
고려 후기의 무신이다.
개요
본관은 의창(義昌)이며, 아버지는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 회산군(檜山君) 황석기(黃石奇)이다.
생애
황상은 충혜왕 때 호군(護軍)에 제수되었다. 공민왕 초에는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제수되었으며, 추충익찬공신(推忠翊贊功臣) 칭호를 하사받고 지추밀원사(知樞密院事)로 승진하였다.
기철(奇轍)을 주살하는 데 공을 세워 1등에 책록되었다. 다만 어사대(御史臺)가 판밀직 신귀의 처 강씨와 사통하였다고 탄핵했으나, 왕이 그의 용맹함을 아끼고 공이 있어 면직에 그쳤다고 전해진다.
1362년 공민왕 때 홍건적이 침입하자 왕을 모시고 남쪽으로 피란하였으며, 이어 교주강릉도도만호(交州江陵道都萬戶)가 되어 안우(安祐) 등과 함께 개경을 수복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참지문하정사(叅知門下政事)에 제수되고 추충분의익찬공신(推忠奮義翊贊功臣) 칭호를 하사받았다. 이후 찬성사(贊成事)에 올랐다가 파직된 뒤 회성부원군(檜城府院君)에 책봉되었다.
1377년 우왕 때에는 서강 도원수에 임명되는 등 여러 차례 왜구 방어에 공을 세웠다.
황상은 활을 매우 잘 쏘아 천하에 이름이 알려져 있었으며, 원나라 순제(順帝)가 직접 그를 불러 팔을 살펴보며 무술을 칭찬한 일화가 전해진다. 또한 노년에 젊은 이성계와 활쏘기 대결을 벌여 50발까지는 서로 팽팽했으나 체력 저하로 이후 명중률이 떨어졌다는 일화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기타
사망 후 시호는 공정(恭靖)이다. 아들은 황윤서(黃允瑞)이다.
참고 자료
- 《고려사》 열전(列傳) 권제2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련 항목